DLF사태 개선안에도…"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해야"

  • 송고 2019.11.15 15:59
  • 수정 2019.11.15 17:06
  •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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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할 때마다 늘어나는 대책과 규제 "한계 존재할 수밖에 없어"

유럽 수준으로 과징금 높일 경우 기업 책임 강화하고 규제 개선 가능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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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사태와 관련해 정부가 은행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정작 DLF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에 대한 명확한 처벌규정이나 피해보상이 제시되지 않았다며 미국·유럽 등에서 적용하고 있는 징벌적손해배상제의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4일 금융위원회는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통해 투자자의 이해가 어렵고 최대 원금손실 가능성이 일정수준(20~30%) 이상인 구조화상품, 신용연계증권, 주식연계상품, 수익구조가 시장변수에 연계된 상품, 기타 파생형 상품(CDS) 등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은행권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일반투자자의 사모펀드 최소투자금액은 기존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시켰으며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경영진 책임 명확화 및 내부통제 강화, 불완전판매 제재 강화, 금융당국의 상시 감시·감독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현재와 같은 고위험 금융상품의 제조·판매 관행이 지속된다면 DLF사태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뼈아프게 다가왔다"며 "개선방안과 별도로 이번 DLF사태 관련 제재 및 분쟁조정 절차는 철저히 투자자보호 관점에서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각계의 의견수렴을 거쳐 DLF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고민했다고 밝혔으나 피해자들은 은행을 믿고 맡긴 노후자금이 사라졌는데도 이들 은행에 대한 명확한 처벌과 피해보상 규정은 개선방안에서 제외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자료를 통해 "금융사 잘못으로 인한 판매에 대해 은행·직원의 책임에 관한 사항과 배상, 분쟁조정 방안 등 실질적인 제시가 중요한데 은행의 판매과정 개선과 감시감독 강화를 제시한 금융위의 대책이 뼈저린 반성과 대책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금융정의연대도 은행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나 집단소송제·징벌적손해배상제도 등 확실한 재발방지책이 담겨 있지 않은 개선안에 대해 금융위가 진정성을 갖고 DLF사태 해결에 나서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재발방지 대책의 핵심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인데 이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 금융위의 발표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며 비판했고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도 "DLF사태와 같은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하면 금융소비자만 피해를 입고 징계는 금융노동자가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금융노동자들이 금융사기에 가담하게 만드는 보수·근무조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DLF사태를 계기로 은행의 사모펀드 판매를 금지하는 등 대응책을 내놨으나 모험자본시장 활성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규제에만 나서는 것은 곤란한 입장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소비자보호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이번 대책을 검토했으나 행정편의적인 규제 양산으로 모험자본의 순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균형잡힌 제도 설계를 위해 노력했다"고 밝히며 이번 대책 마련에 고민이 적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시민단체에서는 정부가 매번 새로운 대책과 규제를 내놓음에도 금융사고가 반복되는 이상 강력한 처벌을 통해 금융회사들이 섣불리 불완전판매 나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데이터 3법'으로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오는 19일 국회를 통과해 마이데이터 산업이 활성화될 경우 기존 금융사고 뿐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보안 문제도 불거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핀테크 업계에서도 개인정보 유출사고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신용석 비바리퍼블리카 CISO(최고정보보호책임자)는 지난 12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디지털전환기의 금융혁신과 금융소비자보호' 토론회에 참석해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할 경우 규제를 양산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과징금을 높여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유럽의 개인정보보호법인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의 국내 도입을 그 방안으로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당 부문', 또는 '관련' 매출액을 기준으로 최대 3%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역대 최고 과징금은 45억원 수준이다.

반면 GDPR은 국내외를 포함한 전체 매출액의 4%를 상한으로 하고 있으며 지난해 5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영국항공은 이 규정에 따라 연매출의 1.5%에 해당하는 27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미국도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이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관리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50억달러(한화 약 6조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개인정보 유출사고에 대한 과징금 수준을 유럽 GDPR 수준으로 상향하게 되면 정부가 개인정보보호책임자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보다 기업에 더 명확한 메시지와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 CISO의 생각이다.

과징금을 대폭 상향할 경우 기업은 정보보안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고 정부는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을 침해하고 위축시킬 수 있는 불합리한 규제를 만들 필요가 없으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감독당국에 책임과 대책을 묻는 악순환도 해결할 수 있다.

신 CISO는 "기업에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법과 개인정보보호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방법 중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일지는 쉽게 알 수 있다"며 "정부가 유럽과 동등한 수준으로 데이터를 활용하겠다고 하면서 사고 위험 때문에 개인정보의 활용을 극도로 제한한다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DLF사태 뿐 아니라 중소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한 키코사태, 가습기살균제 사태 등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높아졌으나 정부는 소극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김태현 금융위 사무처장은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에도 징벌적손해배상의 근거가 마련돼 있다"며 "하지만 제도의 도입은 금융당국이 아닌 입법을 통해 추진해야 할 문제이므로 국회에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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