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농협회장 '전산사태' 오명 씻으려면

  • 송고 2020.02.04 14:56
  • 수정 2020.02.04 18:09
  • 이윤형 기자 (ybro@ebn.co.kr)
  • url
    복사

경영성과 부진·전산사고에 고위층 줄줄이 사퇴에도 이감사위원장 '세이프'

5대 부문 25개 과제 이행 여부…50년 농협 생활 '·책임 회피자' 가를 터

이성희 제24대 농협중앙회장에 과거 감사위원장 당시 발생한 각종 사고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농협중앙회

이성희 제24대 농협중앙회장에 과거 감사위원장 당시 발생한 각종 사고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농협중앙회

전국 230만 농민들을 대표하고, 약 480조원의 자산을 가진 농협중앙회 사령탑에 이성희(70) 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이 당선됐다. 이 신임 회장이 1971년부터 무려 50년 가까이 농협에서 몸담았던 전문가로 평가되는 만큼 앞으로 농협의 변화에 관심이 쏠린다.

49년이란 경력은 그에게 '정통 농협맨'이란 수식어를 달아줬다. 다만 그가 요직에 있을 당시 농협에 발생했던 각종 사고에 대한 책임이라는 낙인도 남겼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이 회장은 농협 발전을 위해 '5대 부문 25개 과제'라는 거대한 약속 내걸었다. 조합원들의 표심을 사로잡았다. 앞서 과거의 오명을 씻어내는 게 먼저라는 뒷말이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열린 회장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제24대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는 조합장 대의원 293명 가운데 82표를 받았다. 유남영(64) 전북 정읍 농협 조합장은 69표를 기록했다. 두 후보는 결선 투표를 진행했고 이 후보는 177표를 받아 당선됐다.

이 회장은 1949년 경기 성남 출신으로 1971년 낙생농협에 입사했다. 이후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낙생농협 조합장(3선)을 지냈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는 농협중앙회 이사를 지냈고, 중앙회장 다음가는 요직으로 꼽히는 감사위원장 자리에서도 2008~2015년 동안 7년을 역임했다.

감사위원장을 지내며 중앙회 경영진의 업무집행을 가까이 지켜본 이 회장에게 거는 농협 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감사위원장 재직 시절 유명무실하던 전산모니터링제도를 개선해 금융사고 예방시스템 구축에 앞장섰다는 것과 2011년 농협 전산사태 때 내·외부망 분리, 백업센터 구축에 목소리를 내는 등 감사위원회 위상을 높이는데 역할도 했다는 이력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경력은 당시 발생했던 사고 책임의 생채기를 더욱 짙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금융사고 예방시스템을 구축하고, 전산망 분리와 백업센터 구축을 주도했지만,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농협에 굵직한 전산장애는 여섯 차례나 발생했다.

실제 지난 2011년 4월12일 농협은 전산 해킹 사태로 창구업무 등 모든 거래를 이틀이나 중단했었다. 통상 금융거래 장애 현상이 수 십분만 지속해도 큰 문제를 일으키는데 당시 농협은 무려 2일간 모든 거래를 중단하면서 사상초유의 전산마비사태라고 평가됐었다.

전산마비사태가 북한의 사이버테러라는 조사결과로 갈음됐지만, 문제는 이 사태 이후로도 농협의 전산 사고는 재발했다는 점이다. 전산해킹 사태 한 달 뒤인 5월19일에는 인터넷뱅킹과 창구업무 마비가 4시간가량 지속됐고, 같은 해 12월2일에는 인터넷뱅킹과 체크카드서비스가 4시간 동안 마비됐었다. 또 다음해인 2012년 2월23일에는 타 은행 공인인증서를 통한 인터넷뱅킹 마비도 5시간이나 벌어졌다.

이성희 회장이 감사위원장 당시 금융사고 예방시스템을 구축하고, 전산망 분리와 백업센터 구축을 주도했지만,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농협에 굵직한 전산장애는 여섯 차례나 발생했다.ⓒ연합

이성희 회장이 감사위원장 당시 금융사고 예방시스템을 구축하고, 전산망 분리와 백업센터 구축을 주도했지만,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농협에 굵직한 전산장애는 여섯 차례나 발생했다.ⓒ연합


사상초유의 전산마비사태를 경험한 농협은 2012년 IT보안에만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이는 당시 농협의 전체 IT예산(2012년 기준) 중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금융회사의 경우 전체 IT예산 중 7% 이상을 IT보안예산에 투입하라는 것이 금융당국의 권고사항인데 이를 크게 웃돈 수치였다.

농협 측은 당시 "IT보안과 관련한 예산이나 인력규모는 금융계 최상 수준"이라고 자부했지만, 2013년 3월20일, 이른바 '3·20 전산대란'을 막지는 못했다. 해당 사태는 농협 뿐만 아니라 전 금융권과 방송사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해킹 사건이었지만, 2011년 발생한 전산 해킹이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음에도 동일한 문제를 방어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농협의 고위임원들은 연이은 전산 사고 문제를 이유로 사퇴했지만, 유독 이 신임 회장은 책임을 비켜갔다. 오히려 감사위원장으로 연임했다.

실제, 해당 사태 이후 임기 한 달을 앞둔 이성희 감사위원장을 제외한 5명(신동규 농협금융지주 회장, 윤종일 전무이사, 김수공 농업경제대표이사, 최종현 상호금융대표이사, 이부근 조합감사위원장)의 고위임원들이 일괄 사퇴했었다. 그러나 관리·감독 체계를 총괄해야하는 감사위원장 직에 있던 이 회장은 살아남았다.

동반책임 오명은 전산사고 뿐만이 아니다. STX 조선해양 등 조선3사 부실 투자 사태(익스포저 5조원)도 이 전 조합장이 감사위원장으로 재직(2010~2016년)하던 당시 발생했다.

이 때문에 2016년 농협금융지주는 누적된 회계손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빅배스(Big bath)를 단행하고 비상경영을 선포해야했다. 빅배스를 실시한 농협금융은 결국 2016년 상반기에 201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충당금 직격탄을 맞은 NH농협은행의 경우 당기순손실이 3290억원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7년이 지난 이후에도 당시 책임이 언급되는 만큼, 선거에 내세웠던 공약들을 빠짐없이 이행하는 것이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의견도 내고 있다.

이와 관련, 그는 이번 선거에서 주요 공약으로 농업인 월급제 등 소득안정제 도입, 중앙회장 직선제 도입, 청년농업인 육성, 여성조합원 지원 확대, 디지털 하나로마트 구축, 농축산물유통구조 혁신 등을 밝힌 상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과오를 넘고 농협중앙회장 자리에 앉은 만큼 이 회장에 어깨에는 막중한 책임이 실린 상황"이라며 "과거 경영성과 부진·전산사고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230만 농민들에게 약속한 농협 개혁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말해다.

한편, 당선 당일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 이 회장은 앞으로 농협의 개혁과 농가 소득 개선을 위해 준비한 방안들을 추진하기 위해 공약을 구체화한 정책 방향을 곧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EBN 미래를 보는 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