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몸부림, 셧다운·희망퇴직…"마른 수건까지 짠다"

  • 송고 2020.04.09 15:26
  • 수정 2020.04.09 15:58
  • 박상효 기자 (s0565@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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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위기', 컨틴전시 플랜 가동…18년만에 '마이너스 정제마진'

"공장 돌리면 손해"…생산량 감소 불가피, 주요 공장 일시'셧다운'

SK종합화학의 SK울산 컴플렉스 전경

SK종합화학의 SK울산 컴플렉스 전경

국제유가 급락과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최대 위기'를 맞이한 정유업계가 기존 사업 중단이나 희망퇴직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정유사들이 통상 하반기 진행했던 정기보수를 앞당겨 실시하면서 일시적으로 가동률을 조절하고 있다.

9일 결국 국내 정유업계는 장기 불황에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수요 감소, 국제유가 폭락까지 겹치며 생산량 감산 수순을 밟으며 컨틴전시 플랜(비상경영체제)가동에 나섰다.

국내 1위 사업자인 SK에너지는 이달부터 가동률을 기존 100%에서 10∼15% 낮췄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이후 처음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8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43일에 걸쳐 제2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정기보수를 실시할 예정이다. 제2공장은 하루 36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생산해 현대오일뱅크 전체 생산능력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정기보수로 생산이 중단되면서 2분기 실적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GS칼텍스 여수공장도 올해 하반기 예정됐던 정기보수 일정을 지난 달 중순으로 앞당겨 실시 중이다. 여수공장은 전 세계 정유공장 중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4위 규모의 시설을 갖춘 GS칼텍스의 주력 사업장이다.

SK종합화학도 SK 울산컴플렉스(CLX) NCC(나프타분해공정)와 합성고무제조공정(EPDM)의 가동을 중단한다.

NCC와 EPDM공정은 대표적인 범용제품 생산공정으로 시황 영향을 크게 받는다. SK종합화학 나경수 사장은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부득이하게 NCC공정과 EPDM공정의 가동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연간 20만톤 규모의 NCC공정은 48년만인 올해 12월 가동을 멈춘다. 이 공정이 중단되면 SK종합화학의 에틸렌 연간 생산량은 87만톤에서 67만톤으로 줄어든다. NCC공장에서 원료를 받아 생산하던 3만5000톤 규모의 EPDM공정은 2분기 중 중단된다.

중단 결정에는 글로벌 신증설의 영향에 따른 공급과잉, 노후 설비에서 오는 경쟁력 저하 및 그로 인한 안전·환경 문제까지 고려됐다.

SK종합화학은 두 공정에서 근무 중인 구성원들을 추후 개인 의사, 역량, 커리어 등을 감안해 전환배치 할 예정이다. 두 공정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고 있는 고객사들에게는 가동 중단 사실을 알리고 제품별 안정적 공급방안을 마련해 고객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정유업계가 공장 가동률을 줄이고 일시적으로 셧다운 하는 배경에는 정제마진 악화가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말부터 추락을 거듭한 정제마진은 지난해 12월 -0.1달러까지 내려왔다. 월평균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2001년 6월 이후 18년 만이다.

정제마진은 3주 연속 배럴당 -1달러대로 집계됐다. 정유업계 실적을 좌우하는 정제마진은 휘발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비 등을 뺀 것으로, 일반적으로 배럴당 4달러는 돼야 수익이 난다고 본다. 현재는 팔수록 손해를 보는 셈이다.

정제마진은 지난해 11월 3~4주, 12월 3~4주에 배럴당 -0.5달러 안팎을 기록하다 이후 오름세를 보였다. 3월 2주 배럴당 3.7달러를 끝으로, 3월 3주에 -1.9달러, 3월 4주 -1.1달러, 4월 1주에 -1.4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2월 2주(배럴당 4달러) 단 한차례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오르면 동반 상승하는 등 정제마진은 유가에 따라 등락이 결정된다.

국제유가는 한 달만에 배럴당 50달러선에서 2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원유를 정제해 생산한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판매가격은 원유 도입가격보다 더 낮은 상황이다.

석유제품 수요도 정제마진 변동에 일조한다. 코로나19로 석유제품 수요 부진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석유제품 판매가 급감, 정제마진 악화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이번주 휘발유 정제마진은 배럴당 -11.7달러로 전주 대비 8.6% 하락했다. 경유 정제마진은 -1달러로 전주 대비 8.7% 빠졌다.

실제 에쓰오일은 정제마진 악화로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지난달 31일 에쓰오일은 실적 발표를 통해 연결기준 지난해 4분기 매출 6조4762억원, 영업이익 386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83.3% 감소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률은 0.6%에 그쳤다.

사업별로는 정유 매출 5조635억원, 영업손실 797억원을 기록했고, 석유화학은 매출 1조91억원, 영업이익 201억원이며, 윤활기유는 매출 4036억원, 영업이익 982억원을 기록했다.

에쓰오일 측 "정유 부문이 중국 신규 정유설비의 상업 가동에 따른 공급 증가와 IMO 2020 시행에 앞서 고유황유(HSFO) 가격의 급락으로 정제마진이 하락해 적자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고도화시설 FCC.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고도화시설 FCC.

정유업계는 이같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가동률 하향조정은 물론, 구조조정이 더욱 확산하고 가속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강달호 사장을 비롯해 전 임원의 급여 20%를 반납하고 경비예산을 70%까지 삭감했고 에쓰오일은 1976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에 나선 상황이다.

지난달부터 국내 4대 정유회사들은 국제유가 급락 직격탄을 맞으면서 공장을 돌리면서도 하루 최대 700억원씩 영업 손실을 보고 있는 중이다.

유가 하락에 따른 정제마진 하락과 재고 평가손실 확대로 정유기업 1분기 실적은 크게 악화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대표 정유사들의 올해 1분기 영업손실 총합이 1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영업손실이 2조원이 넘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지난 7일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난항을 겪는 업계 어려움을 줄여주는 차원으로 일시적 자금 부담, 석유 저장공간 부족 문제 지원에 나서 숨퉁은 트인 상황이다.

우선 54개 석유사업자가 납부해야 하는 4월~6월분 석유수입·판매부과금 징수를 90일간 유예한다. 4월분은 7월에, 5월분은 8월, 6월분은 9개월에 납부하면 된다. 7월분부터는 원래대로 정상 납부하면 된다.

지난해 기준 석유수입·판매부과금 월평균 징수액은 3000억원 정도다. 이번 3개월 징수를 유예하면 9000억원 정도의 납부 부담 완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 저장 공간 확보에도 나선다. 석유업계는 수요 부족으로 인해 남는 석유를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지는 어려움에 처했다. 한국석유공사는 공사의 여유 비축시설을 임대하는 안을 추진한다.

어떤 저장탱크에 얼마나 저장할지는 정유사 각각의 수요와 석유공사의 시기별 가용공간에 대한 실무협의를 거쳐 결정하게 된다.

정부는 국제유가대응반 회의, 석유공사와 정유사 간 실무 태스크포스(TF) 등을 통해 국내 석유제품가격 변동, 석유업계 경영 여건 등을 살펴 필요한 조치를 지속 협의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업계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국제유가가 안정되는 3분기쯤 이들 정유사들의 수익성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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