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감산합의… 정유업계 "공급과잉 줄이기엔 미흡"

  • 송고 2020.04.10 14:38
  • 수정 2020.04.10 14:42
  • 박상효 기자 (s0565@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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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간 하루 1천만배럴 감산 합의...멕시코, 미국 참여가 변수

정유업계 "2000만 배럴은 넘어야"...감산 합의에도 유가는 또 급락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원유 증산을 선택하며 '치킨게임'을 벌여온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OPEC+(오펙플러스)는 5월부터 2달간 100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번 감산 규모는 사상 최대이고, 기간도 2년으로 초장기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감산량에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주요 산유국인 멕시코가 끝내 동참을 거부하면서 이번 OPEC+ 감산안 합의 마저 불발 위기에 처해 정유업계는 오히려 시장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 OPEC+, 두달간 하루 1천만배럴 감산 합의...멕시코, 미국 변수

10일 미국 로이터와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10개국 비회원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오펙플러스), 미국 등은 9일(현지 시각) 향후 석유 생산 정책을 논의하는 긴급 화상 회의를 열고 5월 1일부터 6월30일까지 두 달간 현재보다 하루 1천만 배럴의 원유를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7월 1일부터 올해 말까지 하루 800만 배럴, 내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는 하루 600만 배럴을 단계적으로 감산할 예정이다.

OPEC+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 다른 주요 산유국이 이번 감산에 동참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란, 베네수엘라, 리비아는 제재와 국내 문제로 이번 감산에서 제외됐다.

합의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하루 250만 배럴씩, 모두 500만 배럴의 감산을 떠안고 이라크가 하루 100만 배럴, 아랍에미리트(UAE) 70만 배럴, 나이지리아 42만 배럴, 멕시코가 40만 배럴 등을 감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OPEC+ 회의에서 멕시코가 하루 1000만 배럴 감산에 동의하지 않은 채 회의를 이탈했다.

멕시코는 그간 감산 계획이 없다고 밝혀왔다. 결국 OPEC+는 9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에도 불구하고 최종 성명을 내놓지도 못한 채 회의를 종료했다. OPEC+가 멕시코의 불참에도 잠정 합의안대로 감산에 나설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감산 합의가 성사되더라도 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1000만 배럴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각각의 하루치 산유량과 비슷하고 하루 세계 석유 수요(약 1억 배럴)의 10%에 달하는 물량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사우디와 러시아에 감산을 요구한 하루 1000만∼1500만 배럴보다 더 적은 양이다.

전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이 감산에 힘을 보탤지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미 대통령은 OPEC+ 회의 직후 빈 살만 사우디 국왕,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석유 관련 회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국제유가 방향은 미국의 인위적인 감산 여부에 달려있다”며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미국 셰일업체의 인위적인 감산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셰일기업의 자연스러운 원유 감산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OPEC+는 10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장관 회의에서 감산안을 계속 논의할 예정이라 최종 결과는 아직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원유 감산에 최종 합의하지 못하거나 감산 규모를 늘리지 못한다면 국제 유가는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SK종합화학, SK울산컴플렉스.

SK종합화학, SK울산컴플렉스.

◇ 정유업계 "수요 절벽이 더 문제"...하루 2000만 배럴 돼야

석유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유가 하락까지 맞물리면서 전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정유업계는 국제 원유 시장에 감산 효과가 영향을 미치려면 최소 하루 2000만 배럴을 감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급감한 국제 원유 수요는 하루 1800만∼2000만 배럴이다. 원유 수요가 최대 하루 평균 최대 3000만배럴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시장 참여자들은 회의 직전까지 2000만배럴 이상의 감산 합의를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OPEC 합의가 강제성이 없다는 자체적인 한계점도 변수다.

이를 반영하듯 국제유가는 감산에 합의 소식에도 반등에 실패했다.

9일(현지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배럴당 2.33달러 급락한 22.76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브렌트유(Brent)는 전일 대비 배럴당 1.36달러 하락한 31.48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국제유가는 이날 화상회의로 개최된 OPEC+ 회의에서 하루 최대 2000만 배럴 감산안이 논의되자 장중 12%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감산량이 1000만 배럴에 그치자 급락세로 돌아선 것.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는 "하루 1000만 배럴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감산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으며, 블룸버그(Bloomberg)는 "전 세계 2/3이 연료 사용을 줄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공급량의 10%만 줄이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IEA(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OPEC+이 하루 1000만 배럴 감산을 합의해도 세계 석유 재고는 2분기에 하루 1500만 배럴까지 증가하게 될 것"이라며 "공급과잉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5일 러시아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 축소에 대응해 원유를 감산하자는 OPEC의 제안을 거부하고 증산을 선언하자 사우디아라비아도 산유량을 늘이겠다고 '맞불'을 놓으면서 국제 유가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사우디는 지난달 6일 러시아와 이견으로 감산 협상이 결렬되자 이달부터 산유량을 지난 2월보다 27% 많은 하루 1230만배럴까지 늘렸다. 이에 따라 유가는 연초 배럴당 65달러에서 3월 5일 회의 직전 50달러로 내린 뒤 회의 직후부터 급격히 하락해 한 때 20달러까지 급락했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OPEC+ 화상회의에서 결정된 감산 이행 여부를 가늠할 지표로 10일(현지시간) 발표될 사우디아라비아의 5월분 OSP(산유국 정부가 공시한 원유 판매 가격)"라며 "사우디가 시장 예상과 다르게 5월분 OSP 마저도 벤치마크 가격보다 낮게 책정할 경우 국제유가는 WTI 기준으로 10달러대 중후반대까지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연구원은 "다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를 사우디도 피해갈 수 없는 형편이고 아직 ARAMCO의 상장을 100% 완료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유가 조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유업계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수요가 근본적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가 하락은 항공편 감축, 입국 금지, 외출금지령 등으로 수요 전망이 급감하면서 시작됐다.

지난달부터 국내 4대 정유회사들은 국제유가 급락 직격탄을 맞으면서 공장을 돌리면서도 하루 최대 700억원씩 영업 손실을 보고 있는 중이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대표 정유사들의 올해 1분기 영업손실 총합이 1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영업손실이 2조원이 넘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국내 정유업계는 장기 불황에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수요 감소, 국제유가 폭락까지 겹치며 생산량 감산 수순을 밟으며 컨틴전시 플랜(비상경영체제)가동에 나섰다.

기존 사업 중단이나 희망퇴직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정유사들이 통상 하반기 진행했던 정기보수를 앞당겨 실시하면서 일시적으로 가동률을 조절하고 있다.

황현수 신영증권 연구원은 “산유국들이 결정한 5월과 6월 감산량 규모는 글로벌 원유공급의 약 10%를 차지하는 수준”이라며 “코로나19 우려에 기인한 글로벌 원유수요 가소분이 더욱 크기 때문에 이번 감산합의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황 연구원은 “글로벌 원유수요 추정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점진적인 감산 이행은 원유시장에 확산된 공급과잉 부담을 줄이기엔 미흡한 조치”라며 "당분간은 공급 과잉 환경이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도 “원유 감산에도 유가가 하락한 것은 이번 감산이 이미 WTI 가격상승에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루 1000만 배럴 감산 규모는 대규모 수요 축소를 고려할 때 여전히 부족하단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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