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국…과기정책 변화 전망은?

  • 송고 2017.01.12 15:17
  • 수정 2017.01.12 15:17
  • 강승혁 기자 (kang0623@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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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R&D 투자 기초과학 위주로, 응용과학 지원 조정 있을 듯…

오현환 KISTEP 연구위원 "미국 R&D 투자전략 변화 맞춰 한국 시장 예의주시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널드 트럼프 공식 페이스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널드 트럼프 공식 페이스북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식 취임, '트럼프의 미국' 출범을 앞두고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 전망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운동 기간 중 과학기술 공약을 뚜렷하게 내세운 바 없기 때문이다.

12일 과학계에 따르면 트럼프가 응용연구에 대한 지출 삭감과 함께 '국익 우선주의'를 정책기조로 표방하면서 우주·신재생에너지 분야 등 국제 R&D(연구개발) 협력체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화당은 그동안 기초과학 분야는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점에선 민주당과 의견을 같이 했지만 응용과학과 기업에 대한 R&D 지원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연구결과를 어디에 사용할 수 있을지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경제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응용연구는 기업의 투자 영역에 속해 있다는 논리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과학 발전에 대해 "장기간 투자를 요구한다"며 "연방 정부 예산의 균형을 맞추고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해 당사자들을 소집해 미국 과학연구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더불어 미래 투자보다 인프라 확대를 강조해 온 트럼프는 오바마 정권이 추진해 온 '화성 탐사 프로젝트' 등 대형 R&D 사업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높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나노, 바이오, 우주기술 등 다양한 과학기술 연구에 대해 협력방안을 논의해왔지만 이처럼 미국 과학기술 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미 과학기술 공조체계에도 상당 부분 영향이 올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한 '과학계의 재앙'이 기우라는 주장도 제시된다.

오현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과학기술혁신 정책 전망'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의 취임으로 인한)이런 불안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미국의 정치체계가 대통령의 철학, 정견에 따라 크게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현환 연구위원은 "트럼프 정부도 공화당이 주장해 온 과학기술정책의 범주 안에서 추진될 것이고 '강한 미국의 회복'을 위해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정책도 일부 계승될 것이기 때문이다"며 "또한 대통령 당선 이후 트럼프에 반대 입장이던 IT업계 대표들을 면담하는 등 선거 당시 정책의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공약 따져보니…"연방 R&D 투자는 기초과학 위주로, 응용과학 지원 등은 조정"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혁신 및 R&D, 교육 및 기술, 세금·재정, 생명공학 기술 등 9개 분야에 대한 트럼프의 공약을 분석, 선거과정에서 기술혁신 이슈 자체에 대한 공약은 많이 제시하지 않은 반면 세금과 규제를 포함한 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줄이는데 중점을 뒀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연방정부의 R&D 예산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우주 개발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연구보다는 사회기반 인프라와 같이 미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해결에 우선해 투자하겠다고 했다.

연방 R&D 예산 투자의 변화는 우선 기후변화 분야에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기간 중 기후변화는 '사기(hoax)'라고 하고 파리기후변화협약의 파기와 UN지구온난화 프로그램 분담금 납부중단을 주장했다. 아울러 연방환경청(EPA)의 화석에너지 사용 규제를 비판하고 석탄, 석유, 가스 개발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한다고 했다.

따라서 에너지부(DOE), 연방환경청 등의 청정 및 재생에너지, 친환경 자동차 분야 등의 조정이 예상된다.

보건의료와 생명공학 분야는 투자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연방정부 R&D 예산의 24.5%(2015년 기준) 정도가 보건의료, 생명공학 분야에 투자된다. 미국 보건의료 분야 R&D 예산의 약 88%는 국립보건원(NIH)이 사용하고 있다.

트럼트 당선자는 NIH에 대한 자금 지원이 비효율적이고 역할이 형편없다고 라디오 방송에서 평가한 바 있다. 아울러 부통령 당선자 마이크 펜스(Mike Pence)는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강한 반대 입장을 표했다. 또한 공공보건 시스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해외로부터의 의약품 수입을 적극적으로 개방할 것을 공약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 비춰 NIH에 대한 구조조정, 보건의료/생명공학의 R&D 투자가 일부 축소 또는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7월 미국 IT업체 CEO, 교수, 엔지니어 등 145명은 '트럼프는 미국 혁신의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애플, 구글 등 미국 5대 IT기업 또한 클린턴 후보의 1/60 수준에 불과한 후원금을 지원하면서 트럼프에 낮은 호감도를 보였다.

이는 트럼프의 망중립성정책(Net Neutrality) 정책에 대한 비판, 사이버 보안 강화, 인터넷 국가 통제 강화 등의 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로 풀이된다.

더불어 전문직 취업비자(H-1B)의 엄격한 운영 등 반이민 정책으로 실리콘벨리 등 IT업계의 인력난도 점쳐진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사이버보안 관련 R&D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이 예상된다. 중국 해커로부터의 미국 보호,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기 때문이다.

연방 R&D 투자는 공화당의 기조와 같이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응용·개발, 시장직접 지원 등은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큰 틀에선 기존 정책 맥 이을 듯…한국 시장 변화 예의주시 필요"

오현환 연구위원은 트럼프 시대 과기정책에 대해 "기존 공화당 정책이 유지될 것인지 여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있으나, 큰 틀에서는 기존 정책과 맥을 같이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오 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은 시장 자체의 자율적 혁신을 위해 정부 개입을 최소화 할 것이지만 2007년 공화당 정부인 부시대통령 시절 제정된 'America COMPETES Act'에서 기초연구 및 민간 기술혁신에 대한 투자 확대, 미래 과학기술 인력 양성 및 STEM 교육 강화 등이 규정돼 있어 변화의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주요 R&D 전략은 '대통령 이니셔티브' 형식을 추가해 추진된다. 따라서 일부 분야의 투자 우선순위가 조정될 수는 있으나 연방정부의 전체 R&D 포트폴리오 자체에 큰 변화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단 생명공학, 보건의료, 기후변화, 에너지, IT 등의 분야에서 일부 정책 방향 및 투자전략의 변화가 예견되므로 한국 또한 분야별로 R&D 국제협력, 시장변화 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오 연구위원은 주문했다.

또 H-1B 비자 심사 강화, 지방주도의 교육정책, 학자금대출 축소 등으로 미국 내 외국인 우수 인력의 탈미국 현상이 예상되므로 우리 유학생의 귀국 및 국내 정착, 외국 우수연구 및 기술 인력의 국내 유인을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고도 밝혔다. 중국은 천인계획, 만인계획 등 강력한 정책으로 우수인력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고 있다.

더불어 오 연구위원은 "법인세 인하는 상당한 자금력을 가지고 막대한 자금을 R&D, M&A 등에 투자하고 있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기술혁신, 창업 촉진을 위한 R&D 직접지원과 조세지원, 공공조달 등 간접지원 정책의 적절한 활용, 시장 창출형 신기술 개발, 시험·인증의 각종 규제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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