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까톡] 그때 알고 계셨죠?

  • 송고 2017.12.03 12:45
  • 수정 2017.12.03 12:45
  •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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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식 경제부 증권팀장.

신주식 경제부 증권팀장.

송년모임이 많아지는 연말입니다. 회계업계에서도 지난달 29일 중소회계법인협의회가 노보텔앰배서더강남에서 송년회를 가진데 이어 다음날인 30일에는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여의도에 위치한 켄싱턴호텔에서 세미나 및 송년회를 개최했습니다.

매년 연말이면 모이는 자리지만 올해 송년회만큼은 회계사들에게 남다른 감회로 다가왔습니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외감법이 개정됨에 따라 회계법인의 독립성과 회계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회계업계는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회계감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중소회계법인협의회 송년회에서는 다시 한 번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됐습니다. 대우조선은 분식회계 혐의가 밝혀지며 지난해 7월부터 1년여간 주식시장에서의 거래가 금지됐고 당시 대우조선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중징계를 면치 못했습니다.

조선업, 건설업 등 수주산업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시작해 마무리할 때까지 많은 기간이 걸리는 만큼 이 기간 동안 발생하는 원가나 매출, 이익 등에 대해 분기별로 반영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5년·20분기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수주금액이 2조원이라고 할 경우 각 분기별 수주금액은 1000억원이지만 분기별로 진행되는 공정이 다르므로 이를 균등하게 나눠서 실적에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회계법인이 쉽게 알 수 없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고객사가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존해야 하는 문제도 회계감사의 한계로 지적됩니다.

지난 2015년 9월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사옥 대강당에서 ‘수주산업 회계투명성 제고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에 앞선 5월 대우조선은 정성립 대표이사가 취임했습니다.

2015년 1분기 43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8년 반만에 영업적자를 신고한 대우조선은 정성립 사장 취임 이후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3조원을 웃도는 영업손실을 신고하며 업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충격은 부실회계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으며 당시 토론회에서는 더 이상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회계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토론회 취재에 나선 기자의 궁금증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대우조선의 회계감사를 담당하던 법인이라면 이와 같은 대규모 손실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해양플랜트로 인해 대우조선 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도 손실 규모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2014년까지 대우조선만 흑자기조를 유지했다는 점도 이상하다는 것이 업계의 의혹이었으니까요.

대우조선을 맡았던 회계법인은 회계기준에 따라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3조원을 웃도는 2분기 영업손실 중 일부라도 이전 실적에 반영할 수 없었는지, 2분기 손실규모가 이처럼 천문학적이라는 점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던진 기자의 궁금증에 대해 답변에 나선 회계법인 관계자는 “그게 고객사에서 회계법인과 충분한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데…”라며 말을 흐렸습니다.

다시 질문에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고객사인 대우조선이 회계감사와 관련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던 건가요?”

이 관계자는 두 번째 질문에 “아차” 싶었던가 봅니다. 그리고 “저, 그 질문은 조선업계에 계신 분께서 설명해주시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라며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현대중공업 재무담당자에게 마이크를 넘겼습니다.

응답에 나선 회계법인 관계자가 당황하고, 질문에 나선 기자도 당황하고, 엉겁결에 마이크를 넘겨받은 현대중공업 재무담당자의 난감한 표정은 2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정확하진 않으나 현대중공업 재무담당자는 “한국 조선업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도 딜로이트안진이 사전에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습니다. 당시 대우조선 업무에 관여했던 직원들이 중징계를 받고 딜로이트안진이 영업정지를 받았을 뿐입니다.

중소회계법인협의회 송년회에서는 회계사가 ‘자본시장의 파수꾼’이 아니라 ‘자본가의 파수꾼’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며 회계감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위해 고객사의 불합리한 요구에 과감하게 “안됩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성이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외감법 개정은 반가운 소식이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며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규제는 기업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올해 들어 유난히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법으로 정한 규제를 지키면서 편법을 일삼는 기업이 있는 이상 규제는 더 이상 기업의 불법적인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보호해주는 명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송년회 자리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이 나오긴 했지만 수년간 대우조선을 지켜본 기자 입장에서는 다른 생각도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우조선의 사외이사 자리는 집권여당의 정치인들이 두루 거쳐갔으며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홍보수석을 맡았던 윤창중 씨도 청와대 들어가기 전까지 대우조선 사외이사 자리에 있었습니다. 정치부 기자라는 것이 경력의 전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사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배경에 강한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대주주로 두고 있는 대우조선은 이로 인해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날들을 보냈으며 정권의 썩은 물은 결국 이곳저곳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법으로 미처 규제하지 못한 부분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개인이나 회사의 이익을 취하려는 자를 ‘디테일에 숨어있는 악마’라고 한다면 부패한 정권을 이용해 한자리 차지하고 그 자리에서 해당 기관이나 기업을 부패시키는 자들은 ‘부패한 정권에 숨어있는 악마’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와 같은 다양한 ‘악마’들을 발견해야하기 때문에 기자들은 더욱 질문에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그때 알고 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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