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전쟁'…보험사의 허점 vs 금감원의 '팔비틀기'

  • 송고 2018.07.19 15:49
  • 수정 2018.07.19 17:19
  •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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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형(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구제 적용을 놓고 쟁점화

보험사 "보험원리에 안 맞아" 반발…금감원 "승인 아니라 약관 수리"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상속형(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구제 적용을 놓고 보험업계와 금융감독원이 자살보험금 사태와 같은 약관전쟁을 치르고 있다.

금감원이 즉시연금 약관에 ‘지급 재원’에 대한 근거가 빠졌다며 1조원에 육박하는 상속형 즉시연금 미지급금액을 모두 계약자들에게 돌려주라고 결정해서다. 소수의 민원인이 제기한 사안이지만 보험 보장의 전제가 되는 약관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 금감원은 모든 상속형 즉시연금 지급재원을 미지급금으로 판단했다.

보험업계는 당국 결정에 따를 경우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비용으로 지출한 사업비를 만기에 자비로 부담해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어서 보험원리에 안 맞다고 반발하고 있다.

금감원은 "약관에 계약 내용을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는 나쁜 관행은 반드시 고쳐져야 하며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맞섰다.

만기환급형(상속형) 즉시연금은 '일정금액 이상의 보험료를 일시에 납입하고 가입 다음달부터 매달 연금을 받다가 만기때 낸 보험료를 그대로 돌려받는' 보험상품이다. 보험사는 계약자가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와 위험보험료를 뺀 금액을 보험료적립액으로 적립해 약정한 공시이율이나 최저보증이율을 적용한 금액을 매달 연금으로 지급한다.

이 상품의 계약이 만기가 되면 보험사들은 가입자가 납입한 원금을 돌려줘야한다. 이를 위해 보험사는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만들어야 한다. 보험사들은 사업비 등으로 빠진 비용만큼 이자수익중 매달 일부를 떼 만기까지 적립하는 방식으로 재원을 확보해 왔다. 이 적립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매달 연금으로 계약자에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이자수익이 줄어들거나 금리가 낮아져 공시이율이 떨어지면면 그만큼 연금이 축소되는 게 상품 구조다. 이번 사태는 보험사들이 이런 즉시연금의 연금액 산정구조를 약관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자살보험금 사태처럼 또 다시 보험업계의 방치된 약관이 문제로 제기된 것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연금수령액이 예상액보다 적다며 민원을 제기한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가입자 손을 들어줬다. 대부분의 위원들은 "매달 연금을 지급할때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약관에 명시돼 있지 않고 산출방법서가 약관에 편입됐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납입원금에서 사업비를 떼고 보험료가 적립되기 때문에 정해진 만기보험금을 줄 수 있으려면 수익의 일정부분을 재원으로 쌓아야 한다"며 "이를 모두 연금으로 지급하고 만기에 원금을 주라는 것은 결국 사업비를 떼지 말라는 것과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업비가 과도할 경우 보험사가 받는 금액을 일부 축소해 가입자에게 지급할 수는 있겠지만 사업비를 모두 돌려주라는 식의 결정은 유례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허술한 약관을 승인해준 금융당국과 약관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쓴 보험업계의 관행을 지적했다. 이에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약관을 승인해 준 게 아니라, 약관을 수리한 행정 절차"라면서 "약관 내용은 보험 계약이 성립되게 하는 약속이며, 보험사 스스로가 약관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해당 분쟁건을 조치한 후 모든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계약자에 일괄적용할 것인지를 이달 열릴 이사회에서 결정할 계획이다. 삼성생명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계약자는 5만5000여건, 42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삼성생명에 이어 한화생명이 2500여명 850억원, 교보생명이 1만5000여명 700억원 규모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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