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보고 하지마세요"…제약회사 영업부가 달라진다

  • 송고 2018.07.23 15:03
  • 수정 2018.07.23 15:02
  • 임태균 기자 (ppap12@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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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출퇴근 및 대체휴무제도 활성화…자율의지에 따라 업무시간 조정

능력 평가 방식 변경으로 실적 압박 해소…숙련된 영업사원이 회사의 힘

#1. 의약품유통기업 A사의 영업사원 이모(36) 씨는 지난 7월 1일부터 실적보고를 하지 않는다. 유통 관리 담당자가 지정되어 급한 출입고 관련 업무도 진행하지 않게 됐다. 의무적으로 이뤄져야 했던 거래처 방문 건수도 권고로 변경됐고, 방문 후 보고서 제출도 선택 가능하다.

가장 큰 변화는 거래처 담당자와 유의미한 스킨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모(36) 씨는 "기존에는 부담감이 커 의무적이고 기계적으로 거래처 방문을 진행했다면, 지금은 능동적으로 거래처를 방문하여 사전에 계획된 모습으로 담당자를 만날 수 있다"며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지금이 훨씬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2. 중견 제약사 B사의 영업사원 강모(33) 씨는 지난 7월 1일부터 모바일 홈페이지를 통해 출퇴근 스케줄을 관리한다. 굳이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현지에서 출근과 퇴근이 가능한 구조다. 저녁약속이나 골프모임의 경우도 사전에 계획안을 제출하면 근무시간으로 반영되고 대체휴무를 받을 수 있다. 해외 세미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동시간도 근무시간에 인정되는 점에서 회사의 변화 의지를 믿을 수 있었다."
강모(33) 씨는 모바일 화면에 나타난 자신의 대체휴무 일수를 보여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EBN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EBN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견 제약사 영업부서와 수도권 인근의 거점 판매조직을 구축한 의약품유통기업들을 중심으로 영업사원들에 대한 업무환경 개선과 업무 능력 평가 방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종근당은 영업직군을 대상으로 간주근로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 해당 제도는 출장 등의 사유에 따라 근로시간 일부를 사업장 밖에서 보내는 과정에서,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업무 진행 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하는 제도다. 현지 출퇴근 제도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한양행도 영업직군을 대상으로 현지 출근제도를 지난 6월부터 시범 운영하는 중이다. 월요일과 금요일만 사무실로 출근하고, 나머지 요일의 경우 지역거점영업장소로 출근한 후 부서장에게 유선으로 보고하는 방식이다. 유한양행은 지속적으로 업무환경 개선을 위한 피드백을 받고 영업사원들이 능동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무형태를 찾아갈 예정이다.

수도권 인근 지역에서 거점 판매조직을 운영 중인 의약품유통기업 A사는 영업사원에게 실적보고를 받지 않기로 했다. 출입고 관련 업무와 성과분석을 위한 실적보고서 작성 업무가 영업사원에게 너무 큰 압박으로 작용하고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에서다.

익명을 요청한 의약품유통기업 A사 관계자는 "노사협의체를 통해 유통에 대한 업무는 관리담당자를 지정하여 거래처의 니즈를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영업사원은 영업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결론적으로 실적 걱정 없는 영업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냐는 의견이 많았다"며 "단기적으로 회사 매출에 변동이 있지 않겠냐는 걱정이 있었지만 유의미한 변화는 아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제약사와 의약품유통기업들의 이와 같은 변화는 기업들의 양적 팽창 모델의 한계가 뚜렷해졌다는 점과 젊은 직원들의 기업을 바라보는 기준이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복제약을 통해 외형을 늘리는 과정에서 실적을 우선하는 기업의 행태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

한 중견 제약사의 인사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미래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크다. 오랫동안 일을 하면 알아줄 것이란 확언을 하지 못하고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줄 수 없다면 지금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다"며 "평생직장이라는 단어는 사어다.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할 시점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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