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조선업계, "양보 못해"…하반기 후판값 협상 '진통'

  • 송고 2018.07.24 15:10
  • 수정 2018.07.24 17:32
  • 박상효 기자 (s0565@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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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최근 연이어 통상압박에 내수시장까지 밀릴 수 없어

조선업계, 생계형 수주가 대부분...후판 가격 인상은 적자 심화 가중

조선용 후판 협상이 격한 진통을 겪고 있다. 철강사들과 조선사가 올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을 두고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조선 및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및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후판 공급사들과 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간 하반기 후판가격 협상이 진행 중이다.

철강업계는 상반기에 이어 후판 가격인상을 검토 중이다. 조선사들의 수주가 회복세를 보이는데다 철강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인상 압박이 커지면서다.

하지만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저가 수주 및 건조물량 축소 등으로 확대된 적자를 타계하기 위해 주자재인 후판의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 철강업계 "후판 수익성 악화, 가격 인상 불가피"...통상압박으로 수출 타격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주요 후판 밀들은 국내 조선사들의 요구를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공장가동률 하락에 따른 원가부담과 더불어 지속된 수익성 악화로 추가 가격 인하는 적자와 직결된다는 것.

특히 최근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 급등으로 열연, 냉연 등 타 제품들이 잇달아 판매가격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용 후판만 예외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최근 미국·유럽연합(EU) 등이 연이어 통상압박으로 수출 숨통을 조이는 마당에, 조선사들과의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까지 밀린다면 내수시장에서조차 살길을 찾기 어렵다는 절박감에서다.

후판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조선사의 요구를 수용할 여력이 없다. 협상에서 원만한 타협이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공장 가동률까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수익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가격 인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토로했다.

조선업체들의 선박 건조에 쓰이는 후판은 말 그대로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판재류다. 후판의 가격을 결정하는 협상은 업체별로 반기마다 실시된다.

후판 공급사인 철강업체들은 지난 2011년부터 수요처인 조선업체들의 불황 및 구조조정을 감안해 후판가격에 대한 동결 및 인하 요구를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철강업체들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한 중국 철강재 및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등의 시황적 요인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실제로 후판을 제외한 열연 및 냉연 등 주요 판재류 가격은 크게 올랐다.

회사별 구체적인 후판 가격이 공개되지는 않고 있으나 업계에선 후판 1t당 약 70만원 안팎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사들이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은 철강재 가격의 바로미터인 중국 철강재의 수출가격과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고로사들의 하반기 보수일정에 따라 감산이 불가피해 공급도 타이트해질 전망이다.

포스코는 지난 23일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후판은 조선쪽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상반기 가격을 시장에 맞게 조정해왔다"며 "하반기에도 이같은 기조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포스코는 "중국은 철강산업 구조조정 진행과 일본 내수 수요산업이 좋아 수입량이 전년 대비 크게 감소했다"며 "후판의 가격은 하반기에도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다"고 설명했다

철강사들은 보통 반기마다 조선사 별로 가격협상을 진행하는데 상반기 가격인상 요인에도 이를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서 상반기 실적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후판의 경우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계속 적자가 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올해 최악, 후판값 인상 자제 요청"...철강업계가 양보를

이에 대해 조선사들은 "너무하다"는 입장이다.

선가는 떨어지고 수주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후판가격까지 올리면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후판은 선박 건조 비용에서 20% 가까이 차지해 조선사들은 후판가격 변화에 민감하다.

이미 물량 감소를 버티지 못하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순환휴직에 돌입한 상황이다. 또 최근 몇년간 불황을 버티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불황에 직면해 있는 조선업계는 철강사들의 후판가격 상승 기조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조선소가 정상화 될 때까지 후판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지난 16일 자료를 통해 "후판 가격 인상은 조선업 생존에 위협"이라며 "철강사의 상황에 대해 이해는 가지만 철강사 전체적으로는 양호한 실적을 실현하고 있으니 조선소 경영 정상화 될 때까지 후판가격 인상을 유보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이어 협회는 "올해 신조선가가 개선되고 있지만 LNG선과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여전히원자재가격 인상분 만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오히려 조선사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는데 선박 제조원가의 15~20%를 차지하는 후판까지 가격이 인상되면 최악의 경영실적을 기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협회는 "지난 2년간 어려운 경영 상황에서도 철강업계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후판 가격 인상을 수용했지만 현 시점에서의 후판 가격 인상은 최근의 경영여건상 감내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올해 건조 선박은 적자를 감수하고 물량 확보를 위한 생계형 수주가 대부분으로 철강사의 후판 가격 인상은 조선사의 적자 심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철강사 역시 통상문제 등의 어려움이 있으나 중국 철강산업 구조조정, 환경규제, 수요증가 등의 시황 호조 영향으로, 전 철강사가 큰 폭의 영업이익을 시현하고 있으며, 적자 품목이었던 후판 제품도 연속 가격 인상을 통해 이미 채산성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협회는 올해 한국 조선사의 후판 소요량을 약 420만t으로 예상, 상반기에 t당 5만원 인상에 이어 또다시 5만원을 인상한다면 산술적으로 올해만 약 3000억원의 원가부담이 추가될 것으로 분석했다.

철강업계와 상생 필요성도 강조했다.

협회는 "장기간에 걸친 조선 시장의 침체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는 조선산업에 연속적으로 후판가격 인상된다면 조선업계의 회생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라며 "향후 조선시장이 회복돼 후판 생산과 공급 또한 확대가 되면 철강-조선의 동반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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