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깨어나라④보험]'사람' 배제된 우물안 개구리…'전문가' 허울 벗어라

  • 송고 2018.09.24 00:00
  • 수정 2018.09.24 19:29
  •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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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만 있고 평범한 보험소비자에 필요한 '보편성' 부재

통계안에 갇힌 계리사 권위의식 팽배·보험사 ‘역마진’만 고민

[편집자주] 한국경제의 ‘대질주’ 시대는 끝났다. 한국경제는 50년간 성장을 이끈 대기업 낙수효과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소득이 이끌어가는 분수효과에 미래동력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산업구조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경제가 7~8%대 고도성장이 아닌 3%대 저성장 구조에서도 안정적 성장을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와 산업의 전환적 공백기에 우리 금융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한 제안들을 6회에 걸쳐 짚어본다.

즉시연금 사태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고질적인 관행과 매너리즘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보험사의 '공급자 중심 마인드'가 허술한 보험약관의 원인이라는 질타다. 본질적으로는 ‘계약자(소비자)는 보험사가 제공하는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탈피해야한다는 지적이다. 
ⓒEBN

즉시연금 사태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고질적인 관행과 매너리즘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보험사의 '공급자 중심 마인드'가 허술한 보험약관의 원인이라는 질타다. 본질적으로는 ‘계약자(소비자)는 보험사가 제공하는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탈피해야한다는 지적이다. ⓒEBN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을 통한 비즈니스가 확산되면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플랫폼업계에서는 화두가 됐다. 이 '사용자 중심 디자인' 밑바탕에는 사용자 입장에서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개념이 깔렸으며 사용자 입장에서 비즈니스를 탐구하는 자세가 담겼다.

이는 사람 중심의 관점을 통해 지식과 기술 및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좀 더 지속가능한 해결 방안, 매력적인 비즈니스 도구를 만들자는 의지다. 보험업계도 이같은 관점을 서둘러 흡수해야 한다는 게 융합경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는 보험사도 예외없이 기업 활동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기 쉬운 정보기술(IT) 시대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IT를 배제한 상태로는 어떤 사업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없으며, 가뜩이나 지금의 소비자들은 꼼꼼하고 능동적인 열정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지금 시대는 독불장군 플레이어가 아니라 소비자와 대화할 수 있는 기업을 원한다.

◆'전문가' 허울만 있고 평범한 소비자에 필요한 '보편성' 부재

1조원대에 육박하는 즉시연금 과소지급 사태의 원인은 우선 '사용자(소비자) 입장'을 간과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유추된다. 전문가들은 이 사태에 ▲‘평범한 소비자’ 관점의 상식을 간과한 보험 전문가의 게으른 태도 ▲‘보험사는 도둑놈들 집단‘이라는 금융당국의 확증 편향, 이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보험사와 소비자 간 불통면에서면 보면, 보험사는 상품의 복잡한 내용을 보편적인 시각에서 소비자에 전달하려는 노력을 빠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시연금 사태가 단적인 예다. 즉시연금은 목돈을 한 번에 보험료로 내면 보험사가 이를 운용해 이익금을 매달 생활연금으로 지급하고 가입자가 사망하거나 만기가 돌아오면 보험료 원금은 돌려주는 상품이다. 일부 보험사가 판매한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약관에 ‘연금지급시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누락되면서 보험금 책정에 대한 민원이 시작됐다.

금융당국에서는 약관을 통해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하려는 보험사의 노력이 취약하다고 판단했다. 보험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고질적인 관행과 매너리즘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보험사의 '공급자 중심 마인드'가 허술한 보험약관의 원인이라는 질타다. 약관 제작 과정에서부터 소비자의 시선에서 보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법률전문가의 관점이 녹아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본질적으로는 ‘계약자(소비자)는 보험사가 제공하는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탈피해야한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보험사의 주장을 수용하면 난해한 산출방법서가 보험약관의 은신처로 기능하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며 약관에 명시하지 않은 보험사의 관행을 비판했다.

보험업법(저자 한기정)에서도 보험약관은 보험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업법에서는 "사업자와 계약자 사이의 경제적 관계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보험사가 자신의 지위를 남용해 약관의 편입과 내용 및 해석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져갈 우려가 있어 1986년 약관규제법이 제정됐다"고 밝혔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열린 '보험산업 감독혁신 TF' 첫 회의에서 "보험약관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불명확한 경우도 있어 민원이 끊이지 않는 등 여전히 소비자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시각에서 보험회사 업무전반을 혁신하는 등 소비자중심의 경영패러다임 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업계는 관행으로나마 약관 내용 설명의무를 이행했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는 “약관에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산출방법서’에 따라 계산해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통상 보험상품을 출시할 때 기초서류라고 불리는 약관, 산출방법서, 사업방법서 등에 관해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은 만큼 당국에 대한 불만을 내놨다.

무엇보다 보험사의 매너리즘은 일단 보험계리사의 권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특히 ‘보험은 원래 복잡하고 어려운 것’, ‘보험은 통계전문가들의 영역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라는 보험계리사 중심의 시각이 매너리즘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보험업계가 금리역마진 등의 금리 리스크를 맞으면서 보험사 중심의 계리기법과 상품제작 관행이 팽배해지면서 보험사는 보험업 특수성에만 천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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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보험사의 매너리즘은 일단 보험계리사의 권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특히 ‘보험은 원래 복잡하고 어려운 것’, ‘보험은 통계전문가들의 영역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라는 보험계리사 중심의 시각이 매너리즘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보험업계가 금리역마진 등의 금리 리스크를 맞으면서 보험사 중심의 계리기법과 상품제작 관행이 팽배해지면서 보험사는 보험업 특수성에만 천착해왔다. ⓒEBN

◆보험계리사의 권위의식 팽배·보험사 이익낼 생각만

무엇보다 보험사의 매너리즘은 일단 보험계리사의 권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한다. 특히 ‘보험은 원래 복잡하고 어려운 것’, ‘보험은 통계전문가들의 영역이라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라는 보험계리사 중심의 시각이 소비자와의 불통의 원인이라는 비판이다.

특히 금융당국과 전문가들은 보험사들이 금리역마진 등의 사업리스크를 맞으면서 보험사 중심의 계리기법과 상품제작에 집중했고, 보험사는 보험업 특수성에만 천착하면서 스스로 매너리즘에 갇힌 양상이라고 판단했다.

업계 스스로는 1998년~2001년 판매붐이 일었던 삼성생명 '여성시대 건강보험'이 보험사 보신주의를 촉발시켰다고 돌아봤다.

모럴리스크 시비가 일었던 이 상품은 삼성생명의 대표적 '실수상품'으로 일컫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희대의 역마진을 초래한 '여성시대 보험' 사건으로 계리사의 운신의 폭이 대거 줄어 보험사에 이익이 되는 상품 개발에만 집중하는 노예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상품 실수에 대해 원죄의식을 느낀 계리사, 상품개발자가 보험사 주주를 위한 인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그러면서도 계리사들은 보험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대체로 보험 통계가 전문가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에 융합경영 전문가들은 보험전문가라는 보험계리사의 권위주의적 독선과 특권의식을 청산하고 소비자들과 새로운 소통의 장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통계가 만능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상품을 비교해서 선택할 소비자 중심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궁극적으로는 보험사 위주의 보험언어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계휴대폰 시장 1위 사업자 노키아도 2007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걸었다. 스마트폰으로의 시대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노키아는 사용자 중심의 가치전환기에 관료주의적 조직문화로 제대로된 의사결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에서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혁신전문가는 보험업계에 “보험사업을 한다는 것은 상품을 만들어 팔기만 하는 는 수준이 아니”라면서 “보험사가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은 새로운 가치와 서비스를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하는 것인데 상품을 사주는 소비자 없이는 보험사의 미래도 없다”고 제언했다. 소비자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어느 보험사라도 노키아처럼 경쟁사에 시장을 잠식당해 소멸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보험사도 애플처럼 탄탄한 지지층의 소비자와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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