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급변 속 현대기아차, 'GM' or '델파이' 선택기로
한국경제연구원, 해외 사례 통해 위기대응 적극 주문
‘노사 협력’ GM 재도약 성공 ‘노사 갈등’ 델파이 추락
권녕찬 기자 (kwoness@ebn.co.kr)
2018-10-11 06:00:00
▲ 최근 미중 무역전쟁과 경기침체 등 대내외 산업여건 악화에 국내 완성차업계가 '고인건비, 저생산성' 구조를 탈피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EBN 자료사진)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한국지엠, 르노삼성, 쌍용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업계가 세계경제의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체질 개선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격화하고 신흥국들의 금융위기가 일촉즉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세계 경제가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한국경제 올해에 이어 내년 성장률도 2%대에 그치는 등 저성장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대내외의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도 국내 완성차업계가 고질적인 ‘고 인건비, 저 생산성’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면 세계 최고수준의 업체에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미국 자동차부품사인 델파이와 프랑스 자동차업체인 푸조.시트로엥(PSA)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1일 해외 자동차업체의 구조조정 사례를 통해 “협력적 노사관계가 구조조정 성패를 가르는 요소”라며 현재 국내 자동차 대기업이 직면한 ‘고 인건비, 저 생산성’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경원은 미국의 글로벌 자동차 회사 GM과 미국 자동차 부품 기업 델파이(Delphi), 프랑스 자동차업체 르노와 푸조·시트로앵(PSA) 그룹 등 4개사 구조조정을 예로 들며 경영 악화를 대비해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경원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생산성 향상에 힘을 모은 GM과 르노는 조기 정상화돼 고용이 다시 늘었지만, 발전적 노사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델파이와 PSA는 국내 생산기반이 줄어 노사 모두 패자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 ‘노사 대립’으로 모두 추락 ‘델파이·PSA’

델파이는 2000년대 초반 자동차부품산업 매출액 세계 1위, 기술력 1위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유지하던 회사였다. 미국 고용 근로자의 인건비가 경쟁사의 3배 수준으로 높았던 델파이는 멕시코·중국 등 저비용 국가에서 제조를 확대해 높은 노동비용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주 고객인 미국 완성차들의 북미판매 부진과 GM의 부품 해외조달 본격화로 델파이의 매출은 2003년부터 정체됐고 철강·레진 가격인상으로 생산비 부담도 가중됐다. 델파이는 판매가(價) 하락, 임금·복지비 증가, 원재료가 상승으로 영업 손실이 4.8억불(약 5445억원, 이하 1$=1134원 기준) 발생했고 2005년엔 상반기 영업 손실이 6.1억불(약 6920억원)까지 불어났다. 이에 사측은 노조에게 임금 60% 삭감 및 의료·연금혜택 축소를 요청했다.

그러나 노조는 노사 협상에서 혜택 축소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고 협상은 끝내 결렬됐다. 이에 사측은 경쟁력을 훼손하는 미국 내 고 인건비와 경직적 근로계약 문제는 법정 밖에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델파이는 같은 해 10월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사 협력에 실패한 PSA도 유사한 파국을 맞았다. 2011년 무렵 유럽국가 부채 위기와 경기 침체로 수요가 위축되자 PSA는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2012년 PSA의 유럽 매출은 정점을 찍었던 2007년에 비해 22.6% 줄었고 영업 손실은 2012년 하반기 42.20억 유로(약 5조 5009억원)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유휴 설비 및 인력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PSA는 기업 정상화를 위해 본사 건물과 자회사를 매각하고 경쟁사 GM과 제휴해 구매 비용 및 차량개발 비용을 절감하는 등의 자구 노력을 했다. 또 폐쇄 공장 근로자는 한명도 강제해고하지 않겠다며 이들의 일자리 대책 마련도 약속했다.

그러나 공장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조건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노조는 사측이 판매를 늘려 공장유지가 가능한데 생산 문제를 과장한다고 비판했고, 제2노조는 2013년 1월부터 4개월간 파업을 지속했다. 경영진과 파업노조는 서로 형사고발도 주고받았으며, 폐쇄 예정이었던 산하 공장은 계획보다 1년 빨리 폐쇄됐다.

◆ ‘노사 양보’로 구조조정 성공한 ‘GM·르노’

GM과 르노도 델파이와 PSA와 같이 ‘고 인건비·저 생산성’의 유사한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노사가 서로 양보한 끝에 구조조정에 성공하는 결실을 맛봤다.

높은 고정비 문제를 겪던 델파이의 모기업 GM은 미국에서 차량 1200만 대를 팔아야 기업 유지가 가능한 상태였다. GM은 미국 자동차시장 축소와 GM의 시장점유율 하락 등으로 2005년부터 매년 대규모 적자를 냈고, 2009년엔 법적 구조조정 절차까지 밟았다.

회사가 존폐 위기에 몰리자 GM노사는 상호 양보해 경영정상화를 추진했다. 노조는 신입사원 임금을 기존 직원의 절반으로 낮추는 ‘이중임금제’를 도입했고 퇴직자 연금 및 의료혜택 축소, 해고시 평균임금의 95%를 지급하는 ‘잡뱅크제’ 폐지, 기업성과와 관계없이 임금 인상하는 ‘생계비 연동 임금인상’ 중단에 동의하면서 향후 6년간 파업하지 않기로 했다.

사측도 향후 미국시장 회복과 경영 개선으로 생산량이 늘면 미국에 물량을 우선 배정하고 해고자를 우선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경영손실에 대한 책임분담 차원에서 경영진을 교체하고 기존 주주의 주식을 전액감자했다.

GM은 노사양보에 기초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2010년 흑자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2011년까지 미국에 46억불(5조2233억원)을 투자하고 해고직원 중 1만1000명을 재고용하며 약속을 이행했다. GM는 2013~2015년 최고실적을 냈다.

르노 역시 매출액 및 영업이익 급감 등 구조조정 필요성에 직면했으나 9개월간의 노사 협의로 경쟁력 강화 합의안을 도출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한경연은 위의 사례를 통해 4개사가 공통적으로 ‘고 인건비·저 생산성’ 구조 문제가 있었고 경영환경이 나빠지자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력적 노사관계를 통해 합의를 도출한 기업은 재도약한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고 한경련은 지적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우리나라 대기업은 생산성 정체와 높은 인건비, 대립적 노사관계란 3중고를 겪고 있다”며 “미중 무역분쟁 위험, 한국 성장률 전망 하향조정 등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는데, 노사가 서로 협력해 선제적으로 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구조를 개선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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