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살롱] 윤석헌 금감원장의 참모로 산다는 것

  • 송고 2019.05.22 17:17
  • 수정 2019.05.22 17:25
  •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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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 8일 취임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 동안 전임 원장들의 연이은 중도 낙마로 바닥에 떨어진 금감원의 신뢰와 영(令)을 바로 세우고 소비자 보호, 감독기구의 독립성 확보를 토대로 금융시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EBN

윤석헌 금감원장이 지난 8일 취임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 동안 전임 원장들의 연이은 중도 낙마로 바닥에 떨어진 금감원의 신뢰와 영(令)을 바로 세우고 소비자 보호, 감독기구의 독립성 확보를 토대로 금융시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EBN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초 청와대 직원들에게 '참모로 산다는 것'(저자 신병주)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국내 대표 역사학자 신병주 교수가 쓴 이 책은 강력한 왕권을 보좌하면서 실제 조선을 이끈 신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권 3년 차를 맞은 청와대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책은 신하들의 지혜를 주목한다.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오른 조선의 왕에게는 저마다의 국정 목표와 방향이 있었고, 그 왕에게 기용된 참모들은 당면한 시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량을 발휘하면서도 때론 왕권을 견제하기도 했다. 저자는 치열했던 40명 참모 인생을 조망하며 이들의 삶이 전체로서의 조선을 채우고 있었다고 서술한다.

가장 이상적인 참모로는 황희를 제시한다. 황희는 세종에게 신뢰를 주면서 정책 개혁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일지 않도록 다방면으로 소통하는 것을 주도했다.

그러면서도 강력한 왕권을 보유한 태종이나 성군 세종 앞에서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직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황희는 명참모로 활약해 이름을 떨쳤을 뿐 아니라 오랜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적 균형 감감을 가졌기 때문에 명재상으로 남아 있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그런 참모 황희와 환상의 '케미'를 이룬 왕, 세종은 또 어떤가. 세종은 전국 방방곡곡을 통해 재능 있는 인재들을 찾았고, 신분을 묻지 않고 중용했다. 개개인의 재능을 간파하는 통찰의 리더였던 세종은 ‘인재가 길에 버려져 있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수치’라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리더들은 과연 어떠한 모습인가.

기자는 근래 조우한 A씨를 떠올렸다. 금감원에서 임원으로 퇴임한 지 8년이 지난 A는 여전히 후배들로부터 존경과 팔로우십을 받고 있는 소수의 인물이다. 그는 단언했다. 윤 원장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과 불만이 나오는 데에는 원장을 보좌하는 참모진, 핵심 부서장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고.

그는 또 '팀원은 팀장이 좋은 리더가 되도록 팔로우십에 충실하되 건강한 의견을 내고, 팀장은 국장이 좋은 부서장이 되도록 현장에서 얻은 화두를 지속적으로 제안하며, 국장은 임원과 기관장이 리더로서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원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원장이 이달 8일로 취임 1년을 맞으면서 "금감원이 확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원장 집권 이후 금감원의 최대 슬로건은 금융소비자보호다. 윤 원장은 금융소비자보호는 타협의 산물이 될 수 없다는 강경론을 펼치며 수익성 중심의 금융사에 경종을 울렸다. 금감원은 그동안 금융이 전문가만들의 판단에 의해 좌우됐다면, 앞으로는 인류보편성을 중점으로 하는 금융이 출현해야 한다고 시사했다. 즉 금융도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얘기다.

금감원은 최근 즉시연금, 암보험금 지급 권고를 통해 이같은 감독관을 피력했다. 외부 전문가들은 윤 원장 취임 이후 금융 산업의 전문성과 소비자 보호라는 보편성 사이의 균형추가 갖춰졌다고 판단하면서도, 산업의 특수성과 관행 및 완만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원장과 원장을 보좌하는 핵심부서의 참모진들은 지난 1년간의 여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EBN

윤 원장과 원장을 보좌하는 핵심부서의 참모진들은 지난 1년간의 여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EBN

내부 직원들 입장에서는 다양한 얘기가 나온다. 원장 특유의 원칙주의와 금융위원회와의 강경 대결 일변도가 감독자 정신을 복원해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수의 실리주의 직원들로부터는 '비전 부재' '싸움만 일으킨 원(금감원)은 고립됐다'는 혹평을 듣고 있다. 그렇다면 윤 원장과 원장을 보좌하는 핵심부서의 참모진들은 지난 1년간의 여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일들이 부정적인 면만 비쳐진 점만 봐도 그렇다. 그만큼 사전 준비와 전략이 치밀하지 못했고, 원장과 참모 간의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종합검사다. 종합검사는 금감원 본래 업무로 윤 원장 이전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해온 금감원의 고유 업무다.

하지만 금융사로부터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현재로서는 여론이 본연의 것보다 사소한 부분만 집중하고 있다. 금감원 한 부서장은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인데 어느 날부터 종합검사가 외부에는 '마른하늘의 날벼락'과 같은 일로 내비쳐져 불필요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고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비용이 초래됐다"면서 "여론이 조용해진 현재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김남희 기자/금융증권부ⓒEBN

김남희 기자/금융증권부ⓒEBN

원장의 참모진은 누구인가. 대표적인 참모가 원장 비서실이다. 비서실 역할은 막중하다. 금감원장의 어젠다(주제)를 감독 방향과 실무로 구현되도록 하는 막후 조정하는 역할이다. 원장을 단순 보좌하는 선에서는 안된다.

세종은 완벽주의자였고 개혁을 추구했지만 황희는 그 옆에서 완급을 조절했다. 그러면서도 황희는 세종의 의중을 간파해 신하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설득력을 발휘했다. 맹목적으로 세종을 찬탄하거나 자신을 희생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군주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다 원장과 직접 마주하는 핵심 부서장도 원장 보좌에 책임이 있다. 핵심 부서라면 인적자원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인적자원개발실, 국회 등 대외 국가기관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기획조정국, 대외 언론과의 관계 전략을 짜는 공보국, 금융감독업무를 총괄적으로 조율·대표하는 감독총괄국, 조직내 이상징후를 찾는 감찰실 등이 있을 것이다.

이들 부서는 원장이 필요로 하는 핵심 이슈를 직접, 자주 전달하면서 원내 각 분야를 대표한다. 이들 참모의 시각과 전략은 원장의 철학 실현과 기관 운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한 조직의 정치적·경제적 위기가 닥칠 때 수장 주변에 어떤 참모가 있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결정될 수 있어서다.

또다른 문제는 원장이 지근거리 부서 의견만 듣고 이들에만 의존한다는 점이다. 참모진 의견을 듣되 원장은 금융권과의 소통을 늘리고, 기타 부서 및 후선으로 빠지거나 파견 간 직원들의 견해도 들어야 한다는 게 원내 직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금융지주 회장들과 윤 원장의 조찬 모임이 정례화됐지만, 조직 내 작은 민심과 현실감각을 인지하는 것도 수장의 몫이다.

다시 세종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세종은 이름뿐이던 집현전을 명실공이 최고의 기관으로 격상시켰고 인재들을 발굴해 그들이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연구할 수 있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겸해 최상의 환경을 이뤘다.

그리하며 집현전은 세종이 이루고자 했던 국정의 주춧돌이 됐고 학문적 성취를 이루려는 모든 선비들의 꿈의 전당으로 자리 잡았다. 국가 인재양성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한 것이다.

윤 원장이 남은 임기 동안에는 실제 성과를 보다 많이 거둬나가는 과정이 돼야 하고, 참모 역할의 부서들은 지금보다 더 빠른 움직임과 리얼한 감각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핵심 부서라는 권위와 자만에서 벗어나 금감원의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필요하단 얘기다. 숭고한 목표를 찾아 시대흐름과 원내 민심을 민첩하게 읽어야만 금감원의 도약을 이끌 수 있지 않을까. 2021년, 임기 3년을 채운 윤석헌호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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