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외주화'가 크레인 파업 초래…다단계 하청구조 바꿔야

  • 송고 2019.06.05 10:59
  • 수정 2019.06.05 15:59
  • 김재환 기자 (jeje@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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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에서 임대사업자·계약직 운전기사로 책임 전가

안전사고 발생 시 원청 처벌 수위 높지 않아 개선 필요

타워크레인 노동자 총파업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시 신길동의 한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멈춰있다. 이곳 현장에는 총 6명의 노동자가 70m 높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다ⓒEBN 김재환 기자

타워크레인 노동자 총파업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시 신길동의 한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멈춰있다. 이곳 현장에는 총 6명의 노동자가 70m 높이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다ⓒEBN 김재환 기자

"안되는데, 이거 사고나겠는데 해도 원청이 지시하면 어떡해요? 해야죠. 그런데 사고가 나면 책임은 (원청이) 안진다 이거예요."

타워크레인 파업의 주요 원인이 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업계의 관행으로 굳어져있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지목됐다.

원청 A에서 크레인 소유 임대사업자 B와 운전기사 C로 이어진 하도급계약이 현행법상 허용돼 있기 때문이다. 예견된 리스크를 폭탄돌리듯 하도급계약을 통해 떠넘기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는 건설현장 관리자인 원청에 대한 솜방망이식 처벌이 무리한 작업지시와 안전사고, 임금누수로 이어진다고 호소하고 있다.

4일 서울시 신길동의 한 건설현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의 '타워크레인 노동자 총파업' 기자회견장에서는 불합리한 재하도급 구조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

현행법상 허용하고 있는 1차 재하도급과 솜방망이식 원청 처벌규정이야말로 이번 파업을 촉발한 임금문제와 안전사고의 원흉이라는 주장이다.

1차 재하도급은 흔히 알려진 대형 종합건설사(A)가 수주한 건설공사를 크레인 임대업자(B)에게 하도급하면 이 임대업자가 다시 크레인 기사 알선 업체(C)와 계약하는 형태를 말한다.

문제는 공사 지시권한이 있는 A종합건설사가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무리한 작업을 하도급사 B에게 요구해도 사고 당사자인 C가 거절할 수 없고, 재하도급 과정에서 임금 누수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기자회견 현장에 있는 크레인 노동자들은 원청이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무리한 작업 지시와 안전사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건설산업기본법상 '고의나 과실로 공사를 부실하게 시공해 손괴 또는 공중의 위험을 발생했을 경우' 시정명령이나 영업정지, 과징금 처분은 하도급사 B와 재하도급 당사자 C에게 국한돼 있다.

원청의 책임은 '하도급사의 법 위반 사실을 묵인'하거나 '하수급인에 관리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로 한정돼 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또 원청은 하도급사의 부실공사로 인한 재산손해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지는 대신 하도급사에 다시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서울시 신길동의 한 건설현장 앞에서 열린 '타워크레인 노동자 총파업' 기자회견장 모습ⓒEBN 김재환 기자

서울시 신길동의 한 건설현장 앞에서 열린 '타워크레인 노동자 총파업' 기자회견장 모습ⓒEBN 김재환 기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분석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시 은평구에서 발생한 크레인 전도 사고도 결국 설계상 견딜 수 없는 작업을 무리하게 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쓰러진 소형 크레인 기종 FT-140L의 설계상 정격 하중(최대 3t)이 1.5~1.8t 사이인데 2.8~3t의 콘크리트 바구니(호퍼)를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말 수행한 '타워크레인 안전관리체계 이행력 강화' 연구용역에 따르면 정격 하중으로 작업했을 때에도 FT-140L 기종의 수명은 7년 9개월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토부가 인정하는 합법적 연식은 20년까지다. 정격 하중으로 가동해도 7년 9개월 밖에 쓰지 못하는 크레인을 20년까지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14년차 크레인 기사 김모씨는 "크레인이 들 수 없는 무게를 들라고 하라든지,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시간에 쫓기는 공사를 강요하는 건 결국 원청"이라며 "수십년을 크레인 위에서 보낸 우리가 그걸 몰라서 (그대로 공사를)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현재 양대 노총 집계에 따르면 전국에 설치된 3000여대의 크레인 중 민노총 소속 1244대와 한노총 소속 785대가 파업에 동참한 상태다.

이들의 요구는 임금 7% 인상과 안전사고에 취약한 소형 크레인의 안전규정 신설이다. 다만 임금인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정부의 안전대책 결과에 따라 파업을 철회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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