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사모펀드 포기…리스크 부담 "안파는 게 낫다"

  • 송고 2020.08.03 10:49
  • 수정 2020.08.03 10:50
  • EBN 이윤형 기자 (y_bro_@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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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탁 수수료 0.02%인데, 사고 발생 시 보상률은 100%…"수지 안 맞는고, 부담도 크다"

비이자이익 확대 상황에도 "안파는게 이득"…20조씩 팔아 5년간 수수료 수익 3300억

사모펀드 사고로 홍역을 치른 은행들이 사모펀드 판매 중단을 저울질 하고 있다.ⓒ연합

사모펀드 사고로 홍역을 치른 은행들이 사모펀드 판매 중단을 저울질 하고 있다.ⓒ연합

사모펀드 사고로 홍역을 치른 은행들이 사모펀드 판매 중단을 저울질 하고 있다. 수탁수수료가 0.02%로 수익성이 높지 않은데 사고가 터질 경우 판매 금액의 최대 100%를 배상할 수도 있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고로 신뢰도도 상당히 실추된 상황이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잇단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시중은행들이 수탁회사가 되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사모펀드 재개 여부를 두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하나은행은 금융감독원의 제재로 6개월간 신규 사모펀드 판매가 중단됐지만 지난 6월29일 관련 징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이 인용되면서 사모펀드 판매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이 나온 지 한 달이 넘도록 사모펀드 판매 재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DLF 불완전판매로 징계를 받아 사모펀드 판매 중지 처분을 받은 우리은행도 처분이 끝나는 9월 이후에도 사모펀드 판매를 재개하지 않을 방침으로 알려졌다.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사정이다. 지난달 말 금융위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펀드'에 대한 과징금 20억원을 부과 받은 농협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사모펀드 판매 실적이 전무하다. 신한은행의 사모펀드 잔액은 지난달 말 1조7553억원으로 전년 동월(2조9930억원)대비 41.4% 급감했다.


다른 은행들과 달리 사모펀드 사고 논란에 휘말리지 않은 KB국민은행도 리스크가 낮은 상품들을 선별적으로 판매하는 등 공격적인 영업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은행권의 사모펀드 전체 판매액도 줄어드는 추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올해 1분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사모펀드 판매액은 2조1758억원으로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5대 은행의 사모펀드 판매액은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된 지난 2015년 5조7586억원을 시작으로 매년 큰 폭의 증가세를 유지하다 지난 2018년에는 20조6559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지난해 중반에 DLF 사태가 터지면서 19조5692억원으로 판매액이 줄어들기 시작해 올해는 더 큰 폭으로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들이 비이자이익을 늘려야하는 상황에 이 같은 움직임은 사모펀드 수탁 수수료가 다른 판매 수수료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인 점도 있다. 실제 4대 시중은행의 사모 펀드 수탁 수수료는 0.02~0.03% 수준이다. 통상 다른 펀드 상품 판매·운영을 할 경우 수수료 명목으로 은행은 1%가량의 수익을 취한다. 지난 5년 사이 이들 은행이 얻은 사모펀드 판매수수료는 모두 3315억원에 그친다.


이런 구조에 사모펀드 사고가 터질 경우 수탁사인 은행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엄청 난 부담이다. 앞서 금감원은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에 '투자금 100% 반환'을 권고했다.


은행과 증권사 등 판매처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일 법적 의무는 없지만 만약 이를 수용할 경우 사모펀드 판매 관련 배상액이 1조원을 훌쩍 넘어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손실 배상액을 충당금으로 쌓고 있다. 올해 상반기 우리금융은 1600억원을, 하나금융은 1185억원을 사모펀드 관련 배상 등을 위해 충담금으로 쌓았고, 신한금융은 2016억원을 충담금으로 쌓는 등 4대 금융지주가 쌓은 사모펀드 관련 충당금은 5000억원에 이른다.


앞으로 판매사들이 사모펀드를 감시·감독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8일 은행·증권사에 분기마다 사모펀드 운용 현황을 의무 점검하라는 내용의 행정지도를 발표했다. 수탁 판매사인 은행에 책임을 더 지우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수료가 다른 상품 보다 작은데, 피해 보상 규모는 한도가 없다"며 "금감원의 권고 대로 전액 보상이 아니더라도 배상이 진행될 경우 그동안 사모펀드 수수료로 얻은 수익보다 배상해야할 액수가 더 큰 상황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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