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노조추천이사제, 1년 지나도 입장은 '답보'

  • 송고 2021.02.18 16:53
  • 수정 2021.02.18 17:00
  • EBN 이윤형 기자 (y_bro_@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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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법률 개정이 수반돼야 추진 가능하다"·공운법 지지부진 상황도 영향

협의체 꾸려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논의…3월 사외이사 추천 결과 나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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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대한 IBK기업은행의 입장이 여전히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노조가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명분으로 추천이사제를 도입해야한다고 촉구하면서 노사는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있지만,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한발짝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18일 서면 기자간담회를 통해 "근로자추천이사제나 노동이사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사안으로서 관련 법률의 개정이 수반돼야 추진이 가능하다"며 "노사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의견을 건설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성숙된 노사관계 확립이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노동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한 인사가 사외이사로 이사회에 참석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이날 윤 행장의 발언은 지난해 2월 취임 당시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에 대해 노사가 심도있는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이후 1년이 지나도록 사실상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노동이사제 도입은 기업은행의 의지에 앞서 법 개정 같은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이어서다.


여기에는 최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공공부문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도 염두에 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노총과 전국공공산업노조연맹, 전국금융산업노조, 전국공공노조연맹은 지난 8일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한 바 있다.


노동계와 정부는 지난해 11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회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운법 개정 입법을 건의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노정 합의에도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의 논의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노사는 본격적인 협상을 앞두고 있는 만큼 협의 이후 윤 행장의 입장이 얼마만큼 달라질지 주목된다. 앞서 기업은행 노사는 이달 협의체를 꾸려 노조추천이사제 도입 논의에 돌입할 방침을 세웠다.


그간 기업은행 노조는 사외이사 4명 중 적어도 한 명을 노조 측 추천 인사로 채우는 것은 물론, 은행 정관을 개정해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을 정례화하자고 요구해왔다. 주주 동의가 필요한 타 시중은행과 달리,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행장의 제청을 거쳐 금융위원장이 임명하는 자리인 만큼 내부 합의로 이러한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입장이다.


다만, 사측은 노조추천이사제를 ‘근로자 추천 이사’라고 표현하며 선을 긋고 있다.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이 상시화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은행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정관에 넣자는 노조의 요구도 반대하고 있다.


또 현재 한자리가 공석이지만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고, 이 사외이사는 새사람이 올 때까지 임기가 자동 연장돼 사외이사 선임이 시급하진 않다는 입장이다. 노사는 몇 차례 회의를 거친 뒤 노조추천이사제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낼 전망이다.


아직 팽팽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지만, 윤 행장이 취임 당시 노조추천이사제를 추진하겠다고 노조에 약속한 것과 윤 행장이 추천이사제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에 도입 가능성은 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윤 행장은 노조추천이사제에 대해 "기관을 경영할 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는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시기적으로도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기업은행은 현재 사외이사 2명을 새로 선임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기업은행 사외이사 4명 가운데 김정훈 사외이사는 이달 12일 임기가 끝났다. 이승재 사외이사는 다음 달 25일 임기가 만료된다. 여기에 기업은행 노조도 복수의 인물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그러나 윤 행장은 여기에 대해서도 거리를 뒀다. 윤 행장은 "사외이사는 중소기업은행법 등 현행법 절차에 따라 선임될 것"이라며 "은행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역량을 갖춘 전문가를 금융위에 제청할 계획이고, 이를 위해 직원(노조)을 포함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월 중 복수 후보를 제청할 생각이며 사외이사로서의 선임 여부는 후보역량에 따라 좌우된다. 특정 후보가 자동 선임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행장 입장에서 노조추천 이사제는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 등 장점도 있지만 경영진과의 마찰을 비롯한 부작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그렇다고 노조추천 이사제 도입을 반대하게 된다면 다시 한번 노조와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기업은행이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선임하면 금융권 첫 사례가 된다. 지난해 1월 수출입은행에서는 노조가 추천한 인물이 사외이사 최종 후보에 올랐다가 탈락했다. 같은 해 9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도 노조가 추천한 후보가 최종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조추천이사제는 이사회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회사 전체 이익보다 노조 입장만 대변해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심각한 부작용도 간과 할 수 없어 쉬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사안인 만큼 신중히 접근하고, 은행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좋은 관행을 쌓아가야 한다는 방향에 집중하면서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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