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1세기에 은행 뚫기라니요"

  • 송고 2021.07.16 15:52
  • 수정 2021.07.16 16:42
  • EBN 이남석 기자 (leens0319@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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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석 금융증권부 기자ⓒEBN

이남석 금융증권부 기자ⓒEBN

"21세기에 은행을 뚫는다는 표현이 말이 됩니까."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마감일(9월 24일)이 70여일 앞두고 한 중소 거래소 대표가 건넨 하소연이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실명계좌 발급 전개가 도무지 진척이 없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그다.


해당 거래소 대표는 "4대 거래소와 달리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기 위한 검증 기회 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우리도 신사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그저 공정한 기회를 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요건이 불투명해 거래소들이 일일이 은행을 찾아가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며 "21세기에 은행을 뚫는다는 표현이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개정 특금법에 따라 오는 9월 24일까지 △실명계좌 발급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구축 등의 요건을 갖춰야만 한다. 이후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사업자 신고를 마쳐야 국내에서 정상적인 거래소 영업 활동이 가능하다.


다만 은행은 현재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대 거래소에게만 실명계좌를 발급하고 있다. 실명계좌 없이 벌집계좌를 운영 중인 중소 거래소들은 당장 폐업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검증 책임을 은행에 전적으로 맡기면서 은행은 실명계좌 발급에 난색을 표하는 모습이다. 결국 은행의 금융당국 눈치보기 시전에 애꿎은 암호화폐 거래소들만 속을 태우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물론 거래소들의 난립이 자칫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금융당국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소수 거래소에게만 사업 특권을 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당장 거래소 수를 줄인다 한들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아울러 일부 거래소들이 시장을 독점할 경우 향후 수수료 상승 등의 서비스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이를 통해 투자자들의 해외 거래소 사용이 늘어난다면 자칫 지속적인 국부 유출이 진행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금융당국이 직접 암호화폐 산업을 관리하면서 서서히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7년 16곳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까지 총 23개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신고 수리를 마쳤다. 지난 2019년 6월까지 일본 금융청에 신고를 신청한 거래소만 110개 이상으로, 올해 코인베이스 등이 금융청에 추가 등록됐다.


반면 암호화폐 산업을 향한 우리 금융당국의 잣대는 '기회의 공정'과 '투자자 보호 개선' 측면에서 모두 정당성을 잃은 선택으로 보여진다.


얼마 전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고백한 대표의 진한 말에는 정부를 향한 진한 아쉬움이 베어있었다. 실명계좌 발급 어려움에 '플랜B' 마저 고려 중이라는 그는 암호화폐 산업을 죽지 않는 '생물'로 비유했다.


"저는 암호화폐 산업은 생물이라고 봐요.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바뀌고 있죠. 그런데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누른다고 시장이 죽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음지로 향하는 투자자들만 늘어날 테죠. 암호화폐 산업을 너무 가볍게 보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 그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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