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 칼럼] '官의 것'과 '民의 것'…경계를 허물자

  • 송고 2021.11.15 06:00
  • 수정 2021.12.01 10:50
  • EBN 관리자 관리자 (rhea5sun@ebn.co.kr)
  • url
    복사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한국FPSB부회장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한국FPSB부회장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한국FPSB부회장

요즘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포털에서 제공하는 QR코드를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확인받는다. 거기에는 코로나 백신을 언제 몇 차례 맞았는지에 관한 정보도 포함되어있다. ‘나’에 대한 공적 정보가 민간 시스템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다. 전자운전면허증도 민간 앱을 통해 발급된다. 과거처럼 ‘관(官)의 것’과 ‘민(民)의 것’이 배타적이지 않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금융기관의 업무는 民과 官 사이에 존재하는 공(公)의 영역 쯤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 公의 영역도 인터넷 은행은 물론 핀테크 회사의 서비스를 통해 民의 영역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메신저로 송금하는 것은 물론 모든 금융기관의 자산을 한 눈으로 보면서 이체까지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중앙정부의 정책금융상품은 모두 은행의 시스템을 통해 집행된다. 일부는 자산관리공사가 맡고 있지만 이 또한 公의 영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얼마 전 한 광역자치단체가 저소득층을 위한 소액 신용대출 사업을 하면서 은행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민간단체인 사회연대은행에게 맡긴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방식은 친숙하지 않다.


즉 官公民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 해도 아직 금융의 경우는 官에서 民으로까지 경계가 확장되고 있지는 못하다. 아마도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인 ‘차이니즈 월’ 차원이 아니라 외부를 믿지 못해 설치하는 ‘파이어 월’로서의 관념이 지배하고 있지 않나 싶다. 官이 公까지는 신뢰하나 民에 대해서는 현재 파이어 월이 필요한 모양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사회에서는 官이 가진 인허가나 등록절차에 해당 업권의 협회와 같은 民이 함께 업무를 한다. 인허가 등을 위한 사실관계의 확인에는 서류상만이 아니라 현장을 찾아가 대면해 조사하는 절차를 거쳐야 실체에 부합하는 처리가 된다. 이와같은 영역에서 官이 民을 활용하고 民은 존재이유를 확장하는 것이다. 영국은 금융사기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신고접수 창구인 ‘액션 프로드(Action Fraud)’를 당초 民을 통해 운영하다가 활성화시킨 뒤 官으로 이관했다.


官의 영역을 民에게 확대시킬 때 官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궁극에 있어서는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다. 官의 정책은 대부분이 일정한 틀을 가진다. 즉, ‘어느 선까지가 대상’이라거나 ‘이런 경우는 안 된다’는 식의 경직성을 띈다. 이걸 기계적으로 적용하다보면 ‘경계선의 문제’라든지 ‘구체적 타당성의 결여’라는 한계에 부딪히고 정책의 취지가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직성을 해소하고 구체적 타당성을 증진시킴에 民이 안성맞춤이다.


예를 들어보자.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금융상품자문업자 등록신청이 한건도 없는 것도 결국은 경직된 법에 따라 官에서 관여하는 자격증만 금융위가 인정하다 보니 민간의 좋은 자격증은 사장될 수 밖에 없다. 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경쟁체제에서 움직이는 民을 신뢰하고, 민간에 활용되고 있는 좋은 자격증을 발굴해서 금융상품자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신용등급이야 어떻든, 부양의무자가 있던 말던 살다 보면 필요한 소액 급전을 못 구해 큰 궁지에 몰릴 때도 있다. 30만원 빌리고 일주일 후 50만원 갚아야 한는 불법 사채업자 상품인 ‘30-50대출’을 쓰다 한 두 번 못 갚다 보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고 만다. 전세금 올려주려 받는 대출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이다.


절실한 사정 하나만을 보고 무이자‧무보증으로 소액을 대출해 주는 민간기구가 있다. 사단법인 더불어사는사람들은 지난 10년간 4500여명에게 16억을 이렇게 대출해 주었다. 그럼에도 대손상각율은 3% 정도에 불과하다. 돈 갚으라고 독촉도 하지 않는데 이 정도면 금융기관보다 나은 셈이다. 재원은 주로 기부금이다. 규모는 작아도 이 정도 기간의 성적이면 성공적 모델이라 할 만하다.


이런 민간기구를 통해 정책금융상품을 집행하는 길을 열어둔다면 ‘은행입장에서는 돈도 안 되고 성가시기만 한’ 상품을 훨씬 정책의 취지에 맞게 운영될 것이다. 당장의 시행은 어렵더라도 제도개선을 통해 이런 운영방식에 대한 고민을 해야할 일이다.


조만간 다가올 고금리 시대에는 저소득‧저신용자들이 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정책의 시행으로 얼마가 지원되었다느니 지원받은 사람이 얼마라느니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많은 실수요자가 지원받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고 民의 영역도 많이 투명해졌다. ‘요즘같은 세상에~’라는 말이 그 근거 중 하나다. 신뢰는 일방의 짝사랑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보여야 성립되고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官이 民을 신뢰할 때 ‘官의 것’과 ‘民의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자원들이 큰 시너지를 내는 효과를 가져올 것임을 믿는다.


©(주) E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EBN 미래를 보는 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