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이 만난 NS홈쇼핑 정다은 음악감독(차장)은 원래는 음대 작곡과에서 정통 클래식을 전공한 클래식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장르를 계속 고집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NS홈쇼핑

세계를 휩쓴 K팝만큼이나 한국의 홈쇼핑 방송은 버라이어티하기로 유명하다. 세계 1위 미국 QVC조차 “가격 얼마, 몇개 사면 할인” 등 밋밋한 멘트에 그치는 데 반해 한국 홈쇼핑은 화려한 쇼맨십의 '끝판왕'이다.

쇼핑호스트는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몸을 던진다. 직접 음식을 맛보고 감탄사를 자아내고 옷을 입어본다. 마사지 기구를 팔뚝에 올려 처진 살이 올라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새로운 운동기구와 조리기구를 기꺼이 시연하고 탐색한다.

어디 그 뿐인가. 홈쇼핑 스튜디오는 전골이 보글보글 끓는 주방이 되었다가 어느새 아웃도어 용품을 무장하고 오른 히말라야가 된다. 화려한 옷을 입은 모델들이 워킹하는 런웨이도 된다. 심지어 가상인간까지 홈쇼핑 세계에 발을 들였다. 홈쇼핑 무대에 데뷔한 가상인간 쇼호스트는 MZ세대 고객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팬덤을 자랑한다.

바야흐로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로 진화한 홈쇼핑이다. 그만큼 상품과 고객의 감성을 고무시키기 위한 음악의 힘이 절대적이다. TV홈쇼핑에서 음악의 역할은 상품과 고객 간의 감성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음악은 시청자의 감정을 더 행복하고 한편으론 더 욕망하게 자극한다.

그는 TV홈쇼핑에서 송출하는 하루 300여곡을 선곡하고 상품 카테고리 및 방송 프로그램에 따라 음악을 매칭한다.ⓒNS홈쇼핑

이처럼 홈쇼핑 음악과 음향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은 '음악감독'이 맡는다. EBN이 만난 NS홈쇼핑 정다은 음악감독(차장)은 원래는 음대 작곡과에서 정통 클래식을 전공한 클래식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장르를 계속 고집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정 감독은 우연히 접한 TV홈쇼핑 배경음악 제목이 잊혀 지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생각으로 콜센터에 직접 문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TV홈쇼핑에 음악감독이란 직무가 있음을 알게 됐다.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움직였다. 공채 시험을 통해 클래식 뮤지션에서 쇼퍼테인먼트를 지휘하는 음악감독으로 입문하게 된 것이다. 현재 7개 국내 TV홈쇼핑 업계에서 유일하게 정통 클래식을 전공한 음악감독으로 이 회사에서만 18년째 재직 중이다.

정 감독은 TV홈쇼핑 방송이 뮤지컬 같은 음악극과 닮았다고 강조했다. TV홈쇼핑은 이야기(상품과 상품 특징)가 있는 극이며 시각적 컨텐츠와 음악·음향을 비롯해 스튜디오(무대) 장치, 쇼호스트의 방송 진행(연기)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종합 공연 예술이라는 점에서다.

그는 TV홈쇼핑에서 송출하는 하루 300여곡을 선곡하고 상품 카테고리 및 방송 프로그램에 따라 음악을 매칭한다. 뿐만 아니라 적합한 음향과 성우 목소리를 선정하는 등 청각 컨텐츠 관련 의사결정은 정 감독 판단하에 이뤄진다.

정 감독에게 보물창고 격인 NS홈쇼핑 음반실에는 15만여곡이 저장된 음악 서버와 녹음, 미디 장비 등 온갖 음악 관련 장치들이 24시간 작동하고 있다. TV홈쇼핑 사상 최초로 인공지능(AI) 성우 시스템을 도입해 사업적 성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람의 일은 사라지는 걸까. 아니다. 사람은 기존보다 더욱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새로운 컨텐츠와 시스템 발굴을 연구하고 있다는 게 정 감독의 설명이다.

정 감독의 신년 목표는 보다 과학적인 선곡을 통해 매출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는 '첨단 뮤직큐레이터'가 되는 것이다. 현재 지난 3년간 인공지능을 통한 선곡과 관련 상품 데이터가 15만간 가량 쌓여 빅데이터를 이루고 있다. 이를 분석해 음악과 방송 프로그램 간의 매출 상관관계를 분석해볼 계획이다. ⓒNS홈쇼핑

커머스업계에서 음악 감독이란 커리어가 쌓이자 정 감독은 욕심을 내 이화여대 실용음악 대학원에 지원했다. 정 감독은 "전체 상품 카테고리에 따른 배경음악 간의 상관관계를 체계화하고 싶었다"면서 "일부가 아닌 전상품군과 음악과의 연관성을 분석한 논문은 국내에선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9년 논문 <TV 홈쇼핑 상품유형에 따른 배경음악 연구>를 완성했다.

정 감독은 자신의 일에 대해 "음악은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많지만 고객과 방송 상품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고객과 상품 간의 감성이 맞아 떨어지는 음악을 선곡함은 물론 장르 및 가사, 템포 등에 따라 매칭할 수 있는 분석력과 센스가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첨단 테크브랜드로서의 이미지가 중요한 고가의 안마기 같은 경우 가격대와 연령층, 방송 시간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음악을 선곡한다. 여성 모피와 코트와 같은 시즌 상품은 계절적 감성을 담아 음악을 고른다. 이불 같은 상품은 시청자들이 포근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을 선정하는 식이다.

그에 따르면 안락한 느낌의 소파를 선보이는 방송에는 발라드 장르가 어울린다. 새벽시간대에 주로 시청하는 5060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상품에는 이들에 익숙한 올드팝이 제격이다. 추석과 같은 명절 분위기를 고무시키기 위해서는 퓨전국악 음악이 적합하다. 요즘 같은 성탄 시즌에는 따뜻한 캐롤도 시청자 마음을 열어준다.

상품 브랜드와 품목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해선 정교하게 큐레이팅된 음악 활용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정 감독은 설파한다. 홈쇼핑업계를 비롯해 채널 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고객 눈높이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홈쇼핑 방송에서의 최신 음악 경향은 어떠할까. 정 감독은 "2000년 초반엔 기승전결로 이뤄진 방송흐름에 맞게 맥락적인 구성으로 선곡했다면 최근엔 내러티브보다 순간순간에 집중한 선곡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는 홈쇼핑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상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사가 없는 연주곡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홈쇼핑 채널이 7개까지 늘어나면서 고객들이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멜로디가 필요해 아이돌을 비롯한 유행가 등이 적극적으로 활용돼 왔다"고 덧붙였다.

정 감독의 신년 목표는 보다 과학적인 선곡을 통해 매출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는 '첨단 뮤직큐레이터'가 되는 것이다. 현재 지난 3년간 인공지능을 통한 선곡과 관련 상품 데이터가 15만간 가량 쌓여 빅데이터를 이루고 있다.

이를 활용해 음악과 방송 프로그램 간의 매출 상관관계를 분석해볼 계획인 정 감독은 빅데이터를 통해 보다 합리적이면서도 '힙한' 음악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일이 뮤직큐레이터라고 자평한다. 그리고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언도 전한다.

그는 "뮤직큐레이터는 생활 속에서 음악을 생활의 상품 이미지와 관련 감수성과 매칭하고 분석하는 생각을 다각도로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면서 "예를 들어 코엑스 박람회 등에 전시된 상품들을 살펴보면서 매장에서 나오는 영상과 음악, 그리고 매장 분위기 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현실에 적용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정다은 감독이 NS홈쇼핑 방송 스튜디오에서 판매 중인 제품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NS홈쇼핑

정 감독은 앞서 올해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케이컬쳐 시대의 뮤직비지니스(저자 김정섭)>에서 뮤직큐레이터 성공사례로 언급되기도 했다.

음악을 전공한 후배들에게 경계를 넘는 도전을 해 볼 것도 제안했다. 그는 "기업이 마케팅 극대화 일환으로 음악의 중요성을 간파하면서 광고 제작자들은 시각적인 컨텐츠 뿐 만 아니라 미래 핵심 전략요소 음악 컨텐츠를 극대화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런 마케터들과 전문음악인이 협업해서 공감각적인 컨텐츠가 산업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음악 전공한 후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볼 것을 제안한다"고 덧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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