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 칼럼] 노년에 대형·고층아파트 문제는 없는가?

  • 송고 2022.07.28 06:00
  • 수정 2022.09.22 20:55
  • EBN 관리자 (rhea5sun@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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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

지금과 같은 100세 시대에는 노후에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현역 시절부터 미리미리 생각해보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녀들이 부모들하고 같이 살다가 독립해서 나가면 대부분의 가정이 부부 둘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부부 둘이만 살다가 한 사람이 아플 수도 있다. 부부 간병기라고 그런다. 그러다 한 사람 떠나고 혼자 남는다. 나중에는 혼자 남는 사람도 아프다가 떠나게 된다. 30~40년 사이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과정별로 나는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문제를 미리미리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우리나라 부모세대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딸이 시집갈 때쯤 되면 큰 집으로 이사 가려고 한다. 그래야 사돈네들 보기에 폼도 나고 대형아파트가 재테크 수단도 되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대형아파트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고 있다. 왜 그럴까? 2020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가구수는 2096만 가구였다. 그중에서 1인가구와 2인가구를 합친 비율이 1980년도만 해도 15% 밖에 안됐다. 이것이 2020년에는 60%로 늘었다. 2045년이 되면 70% 정도가 혼자 아니면 둘이 사는 세상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웃나라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이 비율이 60%를 넘었다. 우리나라도 일본도 대부분의 가정이 혼자 아니면 둘이 사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재건축한다 하면 “몇 평 늘어나죠?” 이것부터 물어보는 습관이 있다. 앞으로도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 것인가?


노년에 고층아파트에 사는 문제도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유난히 고층아파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8년 전쯤 일이다. 오오하라 레이코라는 일본의 국민 탤런트가 사망을 했는데 사흘 만에 발견됐다는 기사가 보도된 일이 있다. 이른바 고독사이다.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어느 현(도)의 뉴타운 단지 하나를 조사해봤더니 그 전 3년 동안에 고독사 한 사람이 25명이었다. 그 사람들이 사망 후 발견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21.3일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비극인가?


발표된 자료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조사를 해보면 비슷한 사례가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데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들하고 같이 살지 않으면 이웃집만 한 복지시설이 없다. 그런데 30층이나 40층에 혼자 아니면 둘이 살고 있을 경우 누가 자주 찾아오겠는가?


아파트의 슬럼화 문제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에 일본의 시미즈 지히로 니혼대학 교수가 쓴 ‘빅테이터를 통해서 본 일본 부동산 시장의 미래’라는 자료를 읽은 일이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노후화된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못해서 슬럼화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를 구분소유 주택이라고 부르는데 구분소유 주택을 재건축하려면 주민의 80%, 완전 철거를 하려면 100%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그만큼의 동의를 얻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재건축의 경제성, 소유주의 고령화, 상속된 아파트일 경우 상속자들 간에 합의가 어렵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재건축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위치가 좋아야 하고, 둘째는 저층이어야 한다. 고층으로 만들면서 비용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치가 좋지 않거나, 위치가 좋다고 하더라도 이미 고층이면 재건축이 어렵다. 오죽하면, 지금까지 재건축에 성공한 아파트의 80%는 지진으로 붕괴되어 저절로 주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었던 아파트일 정도이다. 재건축을 못한 아파트들은 슬럼화 되고 빈집 예비군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 노후화된 아파트는 그 자체의 문제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주위의 지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조사자료에 의하면, 어느 지역에서 건축된 지 20~25년 정도 지난 아파트가 1% 증가하면 그 지역의 지가를 4% 정도 하락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금 일본의 아파트 슬럼화 문제를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왜 그런가? 아파트의 슬럼화가 문제라고는 하지만 일본은 전체 주택 중 높이 6층 이상인 아파트의 비율은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어떤가? 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주택 중 아파트의 비율이 6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비율은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형편만 되면 아파트에 거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방도시를 지나면서 벌판에 고층아파트가 서있는 걸 보면 10년, 20년 뒤에 우리 손주들이 그 아파트들을 처리하는 문제로 얼마나 고생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고령화 시대, 1인 가구 시대에는 주택의 형태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축가가 있다. 2009년에 입주한 판교타운하우스를 설계한 일본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다. 사람들이 ‘내 집’을 꿈꾸는 동안 주택은 밀실이 되고, 주변 환경은 황폐해졌으며, 지역사회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해 버렸다고 진단한 그는 지역사회권, 이른바 ‘동네공동체 형성’을 제안해왔다. 동네공동체란 각 개인이 최소한의 전용공간과 최대한의 전용공간을 갖는 공동체를 말한다. “개인의 취미나 특기를 다른 사람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거공간이 변화하면 이웃이 아이를 잠깐 맡아주거나, 주말 목수가 되거나, 외국어 강의를 진행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택단지나 뉴타운, 공영주택 등 집합주택에 개방공간이 더 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원래 한국의 전통가옥도 외부에 개방된 부분과 사생활을 지키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주택이 사라지고 모두 밀실 같은 주택이 됐다. 고령화 시대, 1인 가구시대에 그런 밀실 같은 주택은 더는 바람직하지 않다” 판교타운하우스 설계를 요청받고 한국의 주택사정을 살펴본 뒤 그가 내린 결론이다.


그리하여 모든 주택현관 사방을 유리로 설계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판교타운하우스는 분양 당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밀실에 익숙해있어서 개방형을 꺼렸던 주민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주민들의 생각이 바뀌어 갔다. 주민들은 그에게 감사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입주 10년 후에는 그를 초청하여 파티를 열기도 했다. 입주하여 10년을 살아보니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령화 시대, 1인 가구시대에 노년을 보낼 주거형태를 결정하는데 참고로 해야 할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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