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자식 같은 고로 살렸다"…포항제철소 복구에 땀·눈물

  • 송고 2022.11.24 14:04
  • 수정 2022.11.24 15:55
  • EBN 이경은 기자 (veritas@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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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복구된 제3고로, 분당 3톤 가량 쇳물 '콸콸'

가장 큰 2열연공장 복구에 기술력·아이디어 총동원

"이제 다 왔다"…내년 1분기 전 공정 완전 정상화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3고로에서 출선(쇳물을 뽑는 작업)을 하고 있다.ⓒ포스코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3고로에서 출선(쇳물을 뽑는 작업)을 하고 있다.ⓒ포스코

"회사 생활 30년 동안 고로(용광로)를 가동 중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습니다. 덕분에 제 자식 같은 고로를 살릴 수 있었습니다."


김진보 포스코 포항제철소 선강 부소장은 23일 포항제철소 제3고로 중앙운전실에서 이 같이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 9월 6일 태풍 힌남노로 인한 침수 피해로 포항제철소의 제2·3·4고로를 휴풍시켰다. 노후화로 가동이 중지된 제1고로를 제외하고 운영 중인 모든 고로를 가동 중단한 것이다. 이는 포항제철소가 처음으로 쇳물을 생산한 지난 1973년 이후 49년 만에 최초다.


김 부소장은 1993년 1고로 엔지니어로 포항제철소에 입사했다. 30년을 '제철소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고로를 돌보며 고로와 함께 했다. 스스로를 '고로쟁이'라고 칭하는 그는 처음엔 고로 가동 중지 결정이 의아했다고 한다.


그는 "살면서 겪어 본 가장 큰 태풍은 2003년 '매미'였는데 그때도 고로는 가동했다. 30년을 고로와 함께 살았는데 이번 힌남노를 대비하기 위해 고로를 가동 중단하라고 했을 때 처음엔 '오버'라고 생각했고 동료들 사이에서 볼멘소리도 많이 나왔다. 고로를 중단하려면 그에 수반되는 제강공정과 가스 등도 중지해야 해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로 가동 중단 결정이 결과적으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포스코는 가동 중단 4일 만인 9월 10일 제3고로를 재가동한 것을 시작으로 이틀 후인 12일에는 제2·4고로도 재가동했다.


김 부소장은 "이렇게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고로를 보니 30년 회사 생활 동안 최고경영자(CEO)가 제일 잘한 게 이번 고로 가동 중지라고 생각한다. 내 새끼 고로를 살렸기 때문이다"며 "고로가 안 좋다고 하면 새벽이든 밤이든 회사에 나와 고로를 지켰다. 고로는 내 자식과 같다"고 말했다.


제3고로 중앙운전실을 나와 제3고로 앞에 가니 분당 3톤 가량의 쇳물이 힘차게 나오고 있었다. 온도는 무려 1515도. 제3고로는 연간 450만톤의 쇳물을 생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쇳물은 이동통로를 지나 용선운반차(토페도카)에 실려 제강공정으로 옮겨진다. 제강공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쇳물은 연주공정에서 슬라브로 만들어진다. 슬라브는 직사각형 모양의 철강 반제품이다.


슬라브를 만들었으면 이제 슬라브를 고온으로 누르고 늘리는 열간 압연공정을 진행해야 한다. 이것은 열연공장에서 한다. 그런데 포항제철소는 태풍 힌남노로 대부분의 면적이 침수됐다. 열연공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재직 30년 이상의 고참 직원은 물론 MZ세대 직원 등 전 임직원이 합심해 복구에 박차를 가했다.

추석 연휴에도 출근해 복구에 구슬땀을 흘렸다. 현대제철, 대형 조선 3사 등도 장비를 지원했고 민·관·군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에 힘입어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은 10월 7일 제일 먼저 복구를 완료했다. 정상화된 1열연공장에서는

압연롤러 위에 놓인 새빨간 슬라브가 상하로 왔다갔다 하며 압연 과정을 반복했다. 공장 뒷 부분에는 이런 과정 끝에 만들어진 얇디얇은 열연코일이 돌돌 말아져 있었다. 1열연공장은 연간 350만톤의 제품을 생산한다.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포스코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1열연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포스코

1열연공장을 나와 2열연공장으로 가니 이번 침수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2열연공장은 태풍 힌남노로 인한 폭우로 범람한 냉천 인근에 위치해 피해가 컸다. 지하가 다 침수된 것은 물론 지상도 1.5~2미터(m) 가량이 물에 잠겼다. 공장 벽에는 침수로 인해 물에 잠겼던 경계선이 남아 있었다.


허춘열 압연 부소장은 "2열연공장의 지하설비가 길이 450m, 높이 8m에 이른다"며 "여기에 들어찬 물을 다 빼는 데만 4주가 걸렸다. 뻘도 30cm 가량 차있었는데 바닥에 있는 뻘은 기계로 제거하면 되지만 설비 틈새는 직원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다 제거하고 닦았다"고 말했다.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2열연공장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포스코

23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2열연공장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포스코

2열연공장 지하 바닥에는 물과 뻘이 아직 남아있다. 벽에도 뻘의 흔적이 보였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기술력과 온갖 아이디어를 총동원해 2열연공장 복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2열연공장 복구에는 포스코 사내 명장의 기술력과 도전 정신이 빛을 발하고 있다. 2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에서 가장 큰 공장으로 연간 500만톤의 제품을 만든다. 스테인리스스틸(200만톤)과 전기강판이 주력이다. 이 제품들은 포항제철소에서만 생산한다. 2열연공장의 복구가 지연될수록 해당 제품의 수급 우려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압연기용 메인 모터를 살려야만 했다.


이때 포스코 1호 명장인 손병락 상무보가 나섰다. 손 상무보는 "최대 170톤에 달하는 압연기용 메인 모터를 분리해서 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40년 이상의 현장경험과 우리의 기술력을 믿고 현장에서 복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압연기용 메인 모터 복구 작업은 총 47대중 33대를 분해·세척·조립해 복구하는데 성공했다. 나머지도 재가동 일정에 맞춰 복구를 진행하고 있다.


2열연공장의 초대형 압연기용 메인 모터 앞에 선 손 상무보는 "국내외 설비 전문가들이 어려울 것이라고 한 일을, 이 무모한 도전을 나를 믿고 허락해 준 경영진에 감사하다"며 "후배들아, 하면 된다. 가자! 이제 다 왔다!"고 외쳤다.


포스코 1호 명장인 손병락 상무보가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포스코

포스코 1호 명장인 손병락 상무보가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포스코

포스코는 연내 2열연공장의 복구를 완료할 예정이다. 다른 공장도 복구에 매진해 올해 안에 전체 18개 공장 중 15개를 복구하고 나머지 스테인리스 1냉연공장 등도 내년 1분기 복구를 마쳐 전 공정을 완전 정상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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