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윤석열 정부의 갈라치기

  • 송고 2022.12.01 10:57
  • 수정 2022.12.01 11:36
  • EBN 권한일 기자 (kw@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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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일 기자

권한일 기자

"화물연대 파업 때문에…출근일 수가…", "트럭 기사 자기네들 배 불리겠다고…." 화물연대 파업 닷새째인 지난달 28일, 피해 상황 파악을 위해 찾은 일선 건설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의 원망 섞인 하소연이 이어졌다. 콘크리트, 철골 등 필수 건자재 공급이 끊겨 하도급 일용직·계약직 위주로 일감이 줄어든 원인이지만 유관업계 간 선긋기도 엿보여 여러 생각을 곱씹게 했다.


이튿날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를 "일부 집단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것"으로 규정하고 "명분과 정당성이 없다"고 일갈했다. 또 "불법과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며 "국민들이 많은 불편과 고통을 받겠지만 감내해 달라"고 했다.


이어 "민노총 산하 철도·지하철 노조들은 산업현장의 진정한 약자들, 절대다수의 근로자들에 비해 높은 소득과 나은 근로 여건을 가지고 있다"면서 "파업은 정당성이 없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번 연쇄 파업에 대응하는 핵심으로 경제와 민생 위협, 산업기반 초토화를 내세운다. 더 이상 국가 경제 위기와 국민 불편을 가중시키지 말고 업무에 복귀하라는 메시지로, 국민 대다수도 이를 바라고 있다는 논리가 더해졌다.


얼핏 그럴듯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칼바람을 마다 않고 거리로 나선 화물차 운전자들과 철도·지하철 노조원들의 입장은 일체 배제된 모습이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안전운임제 지속과 대상 품목 확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태세를 전환해 일주일 만에 파업이 종결된 바 있다. 이후 일부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소관위 접수 후 이렇다 할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정부와 화물연대의 대화는 사실상 없었다. 여당 의원들은 한술 더 떠 안전운임 중 화주가 운수사에 지급해야 하는 안전운송운임을 폐지하는 내용이 골자인 '화물차 운수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가 화물연대 측의 거센 반발로 철회하기도 했다. 5개월 넘게 화물연대가 쌓아온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신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면서 재운송거부라는 결과물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정부는 경제 위기와 국민 불편, 불법 행위 등 강한 어조를 앞세워 강경 대응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는 대다수 국민들의 호응을 등에 업은 모양새다. 또 파업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여타 운송·산업계 근로자와 비노조원들을 '갈라치기' 하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마침 불과 9개월여 전에 목도했던 비슷한 모습이 떠오른다. 대선 경쟁이 치열했던 당시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른바 '젠더이슈'를 연일 부각 시켰다.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여성가족부 폐지·병사 봉급 월 200만원' 등 2030 남성들의 표심에 집중한 대선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놓고 남녀를 갈라치기 한다'는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대선 후보 시절과 지금은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대한민국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곧 국가기조가 된다. 특히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 대통령이 나서서 단체 쟁의가 벌어진 원인보다 부정·불법·가진자들의 탐욕으로 규정하는 것은 국민적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은 일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강압적인 해결에 앞서 최소한의 약속 이행과 근원적 대화 노력이 선행됐는지 되뇌어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열과 갈등의 불씨는 계속 남게 되고 이번 사태와 같은 갈등은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국가 경제와 국민 그리고 갈라치기의 당사자인 근로자들이 떠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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