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 칼럼] "은행 돈잔치" 속시원한 '사이다' 발언이지만

  • 송고 2023.02.20 06:00
  • 수정 2023.02.22 18:39
  • EBN 관리자 (gddjrh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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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률 경제칼럼니스트


ⓒ박병률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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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역대급 이익을 남긴 금융권이 정부의 매서운 질타를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에 대해 "돈잔치 한다"고 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 영업방식에 대해 “약탈적”이라고 했다.


그간 고물가로 거의 모든 경제 주체가 고통을 받을 때 2년 연속 역대 최대 이익을 남긴 금융권이 이뻐 보일 사람은 별로 없다. 국내 은행의 수익 중 80~90%는 예대마진에서 나온다. 때문에 대통령과 금감원장의 질타는 속시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경제라는 놈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는 각각의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게임이다. 때문에 한 곳을 세게 누르면 다른 곳이 불룩 튀어나오는 풍선효과가 잦다.


예컨대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면 소상공인들이 경영난을 겪을 수 있고 전기요금을 오랫동안 동결하면 한전의 적자가 너무 커질 수 있다. 법정 대출이자를 너무 낮추면 불법 사채업이 번성할 수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마주했던 난제들이다. 경제는 선의 만으로는 안된다. 아이 다루듯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정부의 금융권을 향한 최근 말들은 '경제의 언어'라기 보다는 '검찰의 언어'에 가깝다.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정부는 지난해 금융지주의 회장 인선부터 목소리를 높여왔다. 금융지주회장 인선이 마무리되자 여세를 몰아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를 개편에 나서고 있다.


금융지주의 역대급 실적이 공개된 이후에는 은행의 성과급과 명예퇴직금, 배당을 손보겠다고 밝혔다. 이 모든 문제가 은행의 과점체제에서 비롯됐다면서 완전경쟁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태스크포스팀(TF)을 구성했다.


하지만 경제의 눈으로 보자면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민간기업인 은행의 인사에 이어 임금, 배당까지 정부가 하나하나 언급하는 것은 은행의 공적인 기능을 감안하더라도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자율성 약화는 글로벌 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 정부가 대출금리 인하에 손대는 것은 자칫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인데, 시중은행이 되레 금리를 내린다면 한은의 통화정책은 작동하지 않는다. 고금리 상황에서 은행채만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면 채권시장이 왜곡될 수도 있다.


은행의 완전 경쟁체제 도입도 민감한 부분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소규모 금융기관들의 여수신경쟁이 위기의 단초가 됐다. 2012년 저축은행 사태도 난립한 저축은행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경쟁이 사고를 쳤다. 금융위기를 맞을 때마다 은행들은 통폐합되면서 덩치를 키웠다.


각 산업간 자금을 안정적으로 융통 해줘야하는 역할을 가진 금융 산업의 특성상 과열경쟁은 또다른 부작용을 빚을 수 있다. 때문에 금융당국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속시원한 대책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도 벌써부터 들린다.


만약 용두사미 대책이 나오게 된다면 일련의 은행 때리기는 고금리에 대한 차주들을 분노를 이용한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과 복지의 분리를 제안한다. 은행이 고금리 상황을 틈타 실력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면 이를 환수해 고금리로 고통을 받는 차주들을 돕는 방식이다.


출연금 혹은 세금 등으로 은행의 초과 이윤을 환수해 이를 재원으로 취약 차주들의 고금리 부담을 낮춰주는 게 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다만 은행의 팔을 비트는 방식은 안되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합법적 제도를 통해야 한다고 이들은 권고한다. 참고로 스페인, 체코, 헝가리의 경우는 금융산업에 대한 초과이득에 대해 한시적으로 과세하고 그 재원으로 금융 취약계층을 돕고 있다.


정부의 발언이 거칠어진 지난 13일 이후 15일까지 4대 금융지주 시가총액은 5조3000억원 이상 감소했다. 금융권에 대한 불확실성에 투자자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의미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은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신념윤리'가 필요하지만, 신념윤리가 정치의 기술인 강권력과 접목됐을 때 항상 옳은 결과를 빚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곱씹어볼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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