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가 쌓아 올린 가계 빚더미, 수습은 은행 몫

  • 송고 2024.07.03 15:19
  • 수정 2024.07.03 15:20
  • EBN 김민환 기자 (kol1282@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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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 금융증권부 기자

김민환 금융증권부 기자

가계부채 관리를 주문했던 정부가 오히려 가계부채를 부추기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불어난 빚더미는 고스란히 금융사들이 떠안게 되는 상황도 만들어졌다.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폭증하며, 가계부채에 적신호가 켜졌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등 정책금융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계대출 관리 방안으로 이달 시행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도입이 연기되면서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5723억원으로 전월 703조2308억원 대비 5조3415억원 늘었다.


특히 주담대 잔액이 5조8467억원 늘어나면서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했다. 주담대 잔액은 상반기에만 벌써 20조원을 돌파해 22조2604억원을 기록했으며, 증가 폭은 4월(4조3433억원), 5월(5조3157억원)에 이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3월 감소 전환했던 가계대출이 4월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이유는 주택도시기금 상품이 은행 재원으로 공급되면서다.


디딤돌·버팀목 등 주택도시기금 정책대출 상품은 통상 연초에 자체 재원으로 공급돼 은행 실적에 포함되지 않지만, 해당 재원이 소진되면 은행 재원으로 대출이 이뤄진다.


4~5월 디딤돌·버팀목 대출 증가액은 6조6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은행권에서 전체 주담대 증가폭(10조2000억원)의 64.7%를 차지했다.


여기에 지난달에는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을 앞두고 막차 수요가 몰리면서 가계부채가 더 늘었다.


스트레스 DSR은 DSR을 산정할 때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적용하는 제도다. 변동금리 상품이 금리가 높아지면 상환액이 늘어 주담대와 신용대출 등 대출 한도가 줄거나 대출이 제한되는 효과를 낸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스트레스 DSR 1단계를 도입해 주담대에 기본 스트레스 금리의 25%를 적용한 바 있다.


이후 이달부터는 시중은행의 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담대까지 포함해 적용비율을 50%로 확대하는 2단계가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오는 9월로 연기됐다. 2단계가 연기되면서 내년 연초 시행 예정이던 3단계도 내년 7월로 연기됐다.


업계 안팎에선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이 연기되면서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완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는 변함이 없으며,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GDP 성장률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상반기에만 벌써 관리 목표치를 넘어섰으며, 정책금융 상품의 확대와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연기로 주담대 수요 증가가 불가피해졌다.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이 가계부채에 브레이크를 걸어 줄 것이란 일말의 기대감 마저 사라지면서 사실상 정부가 주담대 막차 수요를 부추기고 있는 꼴이 됐다.


이에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이달부터 가산금리를 인상해 자체적으로 속도 조절에 나서기 시작했다. 다른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도 현재 금리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또다시 ‘이자 장사’ 비판에 직면할 위험성이 있음에도 규제 지원 없이 총량 관리 임무만을 부여받은 만큼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은행의 자구적인 노력에도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 때문에 하반기 가계대출 증가세를 잡기 더 어려워졌다.


사고는 정부가 치고 수습은 은행 몫이 된 셈이다.


양토실실(兩兎悉失)이라는 말이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다는 말이다.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둘 다 놓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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