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감원, 약관이해도 평가도 우리가 하겠다

  • 송고 2018.10.05 15:24
  • 수정 2018.10.07 10:35
  • 김남희 기자 (nina@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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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연금 등 약관 둘러싼 보험금 지급논란에서 '촉발'

'보험업계 주도의 쉬운 약관 보급' 취지 퇴색 우려도

보험약관을 둘러싼 보험금 지급 논란이 끊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직접 약관 이해도 평가에 나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불분명하고 허술한 약관이 낳은 '즉시연금 사태'를 계기로 종합적 관점에서 약관 관리와 평가방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EBN

보험약관을 둘러싼 보험금 지급 논란이 끊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직접 약관 이해도 평가에 나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불분명하고 허술한 약관이 낳은 '즉시연금 사태'를 계기로 종합적 관점에서 약관 관리와 평가방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EBN


보험약관을 둘러싼 보험금 지급 논란이 끊이지 않자 금융당국이 직접 약관 이해도 평가에 나서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불분명하고 허술한 약관이 낳은 '즉시연금 사태'를 계기로 종합적 관점에서 약관 관리와 평가방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금감원은 표준약관 심사를 통해 보험사들이 최소한 지켜야할 거래 규범을 권고하고 있다. 연장선상에서 약관 이해도 평가를 통해 통용되고 있는 시중 약관의 난해함을 걸러내겠다는 뜻이다. 다만 '보험업계 스스로가 쉬운 약관을 보급하자'는 현 제도의 취지가 퇴색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보험약관 개선의 일환으로 금감원이 약관 이해도 평가를 직접 수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험약관은 전문적이고 보험사업자 중심의 용어가 많아서 개선이 요구돼 왔다.

특히 약관을 둘러싼 보험금 지급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지난해 보험업계를 뒤흔들었던 수천억원대 자살보험금 미지급 논란이 일단락 된 지 1년 남짓 만에 1조원대에 달하는 즉시연금 과소지급 사태가 터진 게 결정적 발단이 됐다.

보험사들은 "즉시연금 이후엔 다른 약관 문제가 터질 지도 모른다"고 긴장하고 있다. 즉시연금의 경우 보험사들은 약관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산출방법서'에 따라 계산해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보험사의 주장을 수용하면 난해한 산출방법서를 용인하게 되고, 보험사들이 계약내용을 구체화하기보다, 숨기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며 허술한 약관을 제공한 보험사가 잘못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보험계약자들이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고, 보험사가 이런 약관의 특성을 방패삼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같은 논란에 금융권에서는 제2, 제3의 '약관 폭탄'을 막기 위해서라도 표준약관에 대한 심사와 감독 권한을 가진 금감원이 책임 있는 자세로 제대로 된 제도 개선에 나서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보험개발원에서 하고 있는 약관 이해도 평가를 금감원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도 개선의 하나로 제시된다.

보험사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 보험개발원이 보험 약관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형성돼 있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로 연간 약 500억원으로 추정되는 보험개발원의 예산 중 절반 가량은 생명·손해보험사로부터 받은 분담금으로 충당된다.

보험 종목별 이해도 평가결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종목에서 평가가 개선되긴 했으나 여전히 우수등급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연구원

보험 종목별 이해도 평가결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종목에서 평가가 개선되긴 했으나 여전히 우수등급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연구원


이에 보험 표준약관 및 표준사업방법서 관리/감독처인 금감원은 현행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를 금감원이 직접 나서는 쪽으로 제도 정비를 검토 중이다. 현행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가 실효성 없이 형식에 그친다는 비판도 수용한 행보이다. 금감원은 보험산업의 잘못된 관행을 혁파하기 위한 T/F(태스크포스)를 가동해 오는 12월께 혁신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들과 이해관계가 얽힌 보험개발원이 공정하게 약관을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기됐다"면서 "보험사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금융당국이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를 진행하는 게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34개 보험사 CEO(최고경영자)와 가진 간담회에서 "보험 약관은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약관내용 자체가 불명확한 경우도 있어 민원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보험 가입은 쉬우나, 보험금 받기는 어렵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고 질타한 바 있다.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금감원과 입장에 차이가 있다. 허술한 약관' 문제에 금융당국이 직접 나서기보다 보험사 스스로 개선해야 한다는 쪽이다. 금융위는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를 지난 2010년에 보험개발원에 위탁한 주체다.

금융위 관계자는 "약관 이해도 평가 본래 취지는 보험사가 평가를 통해 주체적으로 쉬운 약관을 보급하고 촉진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면서 "쉬운 약관을 만들기 위한 경쟁을 붙이도록 한 방식인데 보험개발원이 제도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한 점은 있다"고 전제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약관 이해도 평가를 금감원이 이끄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쉬운 약관을 보급하기 위한 제도가 금융감독을 위한 제도로 변질될 개연성이 있다"면서 "표준약관을 만들고 보험사가 이를 따르도록 한 이상, 약관이해도 평가는 큰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보험 종목별 이해도 평가결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종목에서 평가가 개선되긴 했으나 아직 우수등급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양호'(70점 이상) 이상의 평가를 받은 보험사 비율은 49%에 불과했다. 매년 최소 3곳 이상은 낙제점(60점 미만)을 받았다.

여전히 보험약관은 의료 및 법률용어, 외래어 표기 등이 혼재된 암호문 같은 약관이 적지 않다. 실례로 '표준이율' '상실수익액' '맥브라이드식 후유장애 평가방법'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합의' 등의 불명확한 표현은 평가 때마다 지적되는 사항이지만 수년째 방치돼 있다.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소비자 권익을 위해 보험 약관을 최대한 자세하게 풀어쓴다. 미국은 1978년부터 약관 가독성 테스트를 시행 중이다. 일본은 체크리스트방식의 약관 평가를 강제하고 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약관이 개선돼 가는 수준이 지속되지 못하고 특정 구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반적인 보험약관이 표준약관을 기반으로 대동소이하게 찍어내듯 옛날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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