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식의 이행저행] 토사구팽으로 끝난 삼고초려

  • 송고 2019.02.27 13:55
  • 수정 2019.02.27 17:31
  •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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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식 금융증권부 금융팀장.ⓒEBN

신주식 금융증권부 금융팀장.ⓒEBN

지난 26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추진 중인 대우조선해양 매각 관련한 소회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현대중공업과 매각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매각 대상인 대우조선의 정성립 사장을 배제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 회장은 정 사장이 소외됐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반문했다.

매각 논의에서 정 사장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인수자인 현대중공업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 사장이 배제됐다고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진 않는다. 이 회장은 정 사장이 '임시관리자'일 뿐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이 회장은 "정성립 사장은 지금 물러나는 것이 맞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제조업도 변해야 하며 후임 사장은 IT 전문가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각 추진 발표에 이어 정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대주주인 산업은행 측에서 이제 그만 물러나줄 것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주장이 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산업은행 요청으로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의 구원투수로 나선 정 사장에게 최소한 알리기는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 사장 역시 간담회를 통해 국내 조선산업이 빅2 체제로 개편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는 점에서 대우조선의 매각을 반대할 것으로 생각해 제외했다고 보긴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정 사장이 이 회장의 고교 선배이기도 한데 협상을 진행한다는 정도라도 알리지 않은 것은 지나치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며 "정 사장도 이에 대해 이 회장에게 서운하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대우조선 직원들 사이에서도 서운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 사장이 '임시관리자'라면 우리는 임시로 고용된 직원일 뿐이냐"며 인수합병에 따른 인적 구조조정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임기 만료와 함께 대우조선을 떠났던 정 사장은 6년간 대우정보시스템 대표로 근무했으나 2013년 위기에 빠진 STX조선해양의 대표로 취임하며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는 지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우그룹 해체 이후 경영난으로 회생절차까지 진행한 대우조선을 정상화시켰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었다.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산업은행에서 근무했던 것도 정 사장이 산업은행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었던 이유로 제기됐다.

하지만 정 사장은 대우조선이 분식회계와 함께 심각한 자금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STX조선 대표 임기를 못 채우고 친정으로 복귀했다. 대우조선과 함께 STX조선의 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정 사장 뿐이었고 정 사장은 산업은행의 요청을 여러차례 고사하다 결국 9년 만에 다시 대우조선 대표 자리를 맡게 됐다.

산업은행의 이와 같은 결정으로 공석이 된 STX조선 대표 자리는 대한조선 대표가, 대한조선 대표 자리는 대우조선 임원이 채우는 '사장 돌려막기'가 이뤄졌다.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마지막으로 정 사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부터 5년간, 2015년부터 4년간 대우조선을 이끌었던 정 사장은 남상태 전 사장과 고재호 전 사장의 과도한 수주경쟁 및 분식회계로 인해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에 쏟아지는 모든 비판과 비난을 받아들이며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IT 전문가가 후임으로 오면 좋겠다"는 이 회장의 발언으로 정 사장은 구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서별관회의 등으로 전 정부가 떠넘긴 것이지 산업은행이 스스로 부실기업들을 출자사로 인수한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이 회장의 발언을 생각하면 산업은행으로서는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대우조선을 매각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빅3이자 수주잔량 기준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우조선은 창사 이후 존립이 불투명해질 정도의 큰 위기를 두 번 겪었으며 정 사장은 고비마다 대표이사로서 대우조선의 부활을 이끌어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엇갈릴 수 있겠으나 한국 근대 조선산업의 역사에서 정 사장이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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