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 칼럼] 금융정책의 예측가능성과 기대효과

  • 송고 2024.01.18 02:00
  • 수정 2024.01.18 22:04
  • EBN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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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종 (사)롤링주빌리 이사장/숭실대 법학과 교수

박선종 (사)롤링주빌리 이사장/숭실대 법학과 교수

박선종 (사)롤링주빌리 이사장/숭실대 법학과 교수

최근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했던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가 공식 확정됐다. 산업은행은 '제1차 금융채권자협의회'에서 동의율 96.1%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워크아웃의 개시에 관하여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정당한 '금융정책'의 시행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24조를 근거로 한 적법한 것으로서, '예측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2023년 3월 금감원장이 방문하는 은행마다 금리 인하 대책을 내놓은 사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첫 번째 견해는 금감원장이 개별 은행을 찾아다니는 것이 결국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관치금융’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금감원장이 약자인 금융소비자만을 생각해 직접 발로 뛰는 고군분투로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다.


두 견해 모두 수긍되는 면이 있다. 다만 금감원장의 개별 은행에 대한 금리인하 요구는 명확한 근거 규정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금융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금융정책과 관치금융의 공통점은 금융시장에 ‘일정한 효과’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효과는 어떤가?


예측가능성과 법치주의


2023년 1월 주담대 금리 상단이 8%를 돌파했는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금감원장은 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금리상승기에 은행이 시장금리 수준, 차주 신용도 등에 비춰 대출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은행의 금리 산정·운영 실태를 지속적으로 점검·모니터링해 달라"고 밝혔다. 이어 "미흡한 부분은 개선토록 하는 등 금리 산정체계의 합리성·투명성 제고 노력을 지속해달라"고 덧붙였다. 우리은행은 이날 전격적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나 이는 정당한 금융정책의 예고를 인식한 일개 은행의 자발적인 행위일 뿐 관치금융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정책의 예고에 불과하므로 예측가능성이 선명하지 않고 효과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에 앞서 2022년 6월 한은 기준금리가 급상승하는 상황에서 금감원장이 직접 은행들의 금리 인하를 주문하면서 과도한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금감원장이 은행장들과 간담회에서 "은행들은 금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산정·운영할 필요가 있겠다"고 지적하며 "금융당국이 은행권과 함께 예대금리 산정체계 및 공시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한 점은 명확한 근거 규정이 없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 금감원장의 금리인하 요구는 예측가능성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치금융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그 효과는 즉시 발생하였으나 일시적일 뿐이었고 많은 비난을 수반했다.


설립 자체부터 정부의 인가에 의해 결정되는 은행업의 경우 '예측가능한 관치'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법률과 규정에 따라 당연히 은행의 업무에 개입할 수 있다. 예컨대 금융당국은 ①은행의 건전한 운영 도모 ②자금중개기능의 효율성 제고 ③예금자 보호와 신용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은행의 업무에 개입할 수 있다(은행법 제1조). 다만 구체적 개입은 은행법, 은행법시행령, 은행업감독규정 및 은행업무감독규정시행세칙 등 관련 법률이나 규정에 근거하는 것이 예측가능성 면에서 타당하고 법치주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헌법적 가치'의 언급은 금융당국의 소관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요컨대 제도개선을 통하여 예측가능성을 충분히 제공하면 정당한 금융정책이 되고 지속적인 효과 발생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예측가능성이 부족한 금융당국의 요구는 관치금융으로 분류될 개연성이 높으며 일시적 효과만 가능하다. 그 이유는 예측가능성이 법치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서민금융 종합플랫폼과 예측가능성


올해 6월에는 금융위 주도로 서민금융 종합플랫폼 '서민금융 잇다'의 운영이 개시된다. 동 플랫폼이 가동되면 기존 이용자가 민간 및 정책 서민금융상품을 한눈에 비교·선택할 수 있다. 금융당국의 서민금융 플랫폼 마련은 큰 찬사를 받을만하다. 다만 이러한 플랫폼을 통하여 '서민금융활성화'라는 금융정책을 펼치려면 다양한 민간 콘텐츠의 추가적 개발유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재의 민간 서민금융상품이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서민금융 플랫폼의 공급을 통하여 금융당국의 의도를 짐작할 수는 있으나 구체적 예측가능성은 부족하다. 그러므로 동 플랫폼을 통한 서민금융정책의 실효성이 제고되려면 금융기관에 대한 구체적 인센티브 제공을 통하여 다양한 민간 서민금융상품의 출시를 유도할 필요가 크다. 인센티브 제공 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될수록 금융기관의 예측가능성은 커지고 신규상품 개발의 유인(誘因)이 커진다. 관치금융이라는 비난도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구체적 방법이자 요즈음 강조되는 ESG 경영의 일환으로 기존 개인신용평가 제도에 일부 예외적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극저신용자(채무취약계층)는 금융기관의 '신용'대출 문턱을 원천적으로 넘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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