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N 칼럼] 은행의 본업과 부업

  • 송고 2024.02.19 02:00
  • 수정 2024.02.19 02:00
  • EBN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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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

박선종 숭실대 법학과 교수

은행업이란 ‘예금을 받는 등으로 조달한 자금은 대출하는 것을 업(業)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은행업법 제2조). 은행법은 ‘예금자를 보호하고 신용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동법 제1조). 그러나 작금의 ELS 판매 관련 은행들의 모습은 본업에서 상당히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임직원의 절반 넘는 인력이 ELS 판매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특정 ELS 판매에서 은행이 증권사보다 4배 이상 많다는 점을 정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홍콩 H지수 ELS의 경우 총 판매 잔액 19조3000억원 중 82%가 넘는 15조9000억원이 은행을 통해 판매되었고 증권사의 판매는 17.9%에 불과하다(2023년 11월 15일 기준). 5대 은행이 ELS 판매에서 최근 3년간 벌어들인 ‘수수료’만 7000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은행들이 7000억원의 ‘안전한 수수료’ 수입을 만끽하는 동안 ‘투자위험’은 대부분 개인투자자에게 전가되었다. 5대 은행이 판매한 H지수 ELS 중 2월 7일까지 만기도래분의 평균손실률은 53.6%, 손실액은 5221억원으로 집계되었다. H지수의 큰 폭 반등이 없는 경우 대략 7조원의 손실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은행수수료의 10배에 해당하는 손실을 개인투자자가 입게 되는 셈이다.


은행의 금융투자상품 판매로 초래된 대형금융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크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은행의 반복되는 판매사고와 주원인


은행이 H지수 ELS를 판매한 것은 자본시장에 ‘겸영’ 금융투자업자로 참여한 것에 근거한다(자본시장법 제8조 제9항). 금융투자업은 증권회사의 본업이고 은행의 부업이다. 그런데 부업인 은행의 판매비중이 80%를 넘었다는 것은 상당히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보인다. 더욱이 KIKO, DLS, 라임 등 최근 10여 년간의 금융투자상품 판매사고의 핵심에는 늘 은행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은행의 금융투자상품 판매사고 반복에 대한 근본적·구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금수신은 은행의 본질적 업무로서 ‘안전성’의 상징이다. ELS 등 금융투자상품은 증권회사의 본질적 업무로서 ‘투자성(위험인수)’을 상징한다. 은행의 문턱을 넘는 대다수의 개인 고객은 파생상품에 투자하면서도 은행의 상징인 ‘안전성’을 기대하는 경향이 크다. 이는 판매사고 반복의 주된 원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KIKO 소송을 통한 ‘손해배상’도, DLS·라임 불완전판매에 관한 ‘금융당국의 징계’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제정’도 은행의 반복되는 판매사고를 막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요약하면 지난 10여년간의 ‘대증적’ 처분은 은행의 판매사고 재발 방지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증명된 셈이다. 최근 금감원의 홍콩 ELS에 손해에 관한 ‘은행의 자율배상 압박’과 곧 발표예정인 ‘책임분담기준’도 대증적 대책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기는 어렵다.


이제는 안전성의 상징을 신뢰하는 고객에게 은행의 위험상품 판매를 허용하는 것에 대한 정책적·법적 재고와 대형사고 재발 방지의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판매 구조변경을 통한 재발 방지 방안


그간의 대증적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으니 이제는 ‘구조적 변경’을 통한 해법을 마련하여야 한다.


첫째는, 은행의 안전성을 신뢰하고 문턱을 넘는 고객에게 은행원의 위험상품 판매장소를 변경하는 것이다. 금융투자상품의 판매장소는 금융투자회사(주로 증권사)로 제한할 것을 제안한다. 대부분의 은행은 자회사로서 증권사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BIB(Branch in Branch, 지점 내 지점) 등의 방법으로 판매장소의 변경이 가능하다. 이는 고객의 신뢰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은행이 판매사고가 터질 때마다 겪어온 소송과 징계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정상적인 판매 수익원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다.


둘째는, 은행 내의 신탁계정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기존의 문제는 은행이 위험상품의 판매에만 열중하므로 발생 가능한 위험의 사후관리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은행이 판매한 금융투자상품을 신탁계정을 통해서 직접 운용하면 위험의 사후관리뿐만 아니라 위험의 사전파악도 은행 내 전문가에 의해 체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각 은행의 운용능력에 따라 금융투자상품의 판매량과 종류를 자율적으로 통제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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