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 어이할꼬"…금융위 밀어붙이기에 시중은행 앓는다(종합)

  • 송고 2016.02.01 14:31
  • 수정 2016.02.02 16:41
  • 백아란 기자 (alive0203@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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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성과주의 가이드라인…“성과급 비중 30%까지”

노사갈등 촉발 우려…시중은행 “상황 지켜보겠다”

“당국의 시그널이 명백한데 (반발할) 힘이 어디 있겠나. 계속 얘기가 나오니 하긴 해야 한다.”

“홍보나 수치로 역량을 매길 수 없는 부분은 어찌 해야 하나. 취지는 공감하지만 압박을 안 느낄 수 없다.”

성과주의 도입을 둘러싸고 나온 시중은행 관계자들의 속내다. 최근 금융당국이 성과주의 도입 추진을 강경히 밀고 나감에 따라 금융권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노동조합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당국의 압박이 들어오니 울며 겨자먹기로 임금과 조직체계 바꿔야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임종룡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금융위

임종룡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금융위

◆ 금융위, 성과주의 가이드라인 발표…“성과급 비중 30%까지 확대”
1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오전 금융공공기관장 간담회를 열고 ‘금융공공기관 성과중심 문화 확산방향’을 추진키로 했다.

이른바 ‘성과주의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최하위·기능직을 제외한 모든 직원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성과연봉 비중을 30%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서 권고하는 안 가운데 가장 높은 기준이다.

성과연봉제 적용대상 또한 종전의 1327명(전체 7.6%)에서 9배가 넘는 1만1821명(68.1%)으로 늘어난다.

금융위는 차하위 직급(4급)에도 기본연봉 인상률 격차를 적용하고, 최고-최저간 전체연봉 격차를 20~30% 이상 유지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올해부터 간부직은 30% 이상, 비간부는 단계적으로 20% 이상 전체 연봉의 차등이 적용된다.

금융공공기관 차하위직급(4급)은 모두 6248명으로 총 직원의 36% 수준이다.

고정 수당처럼 운영되는 부분은 변동성과급으로 전환하며, 성과 평가시 개인 및 집단 평가를 반영한다.

성과주의 도입을 유도하기 위해선 매월 금융공공기관 간담회를 통해 분야별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도입정도나 시기 등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키로 했다.

ⓒ금융위

ⓒ금융위

◆ 노사갈등 촉발 우려…시중은행 “상황 지켜보겠다”
노조 반발과 관련해서는 전면전에 나설 방침이다.

임 위원장은 “필요하다면 노조와도 직접 면담하고, 노사가 협력해 선도하는 기관에게 확실한 인센티브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성과별 차등화 ▲금융업무 전문화 ▲공공부문 선도를 3대 원칙으로 제시하며 “무임 승차자를 비롯해 임금체계 뿐만 아니라, 평가.교육.인사·영업방식 등 전반에 걸친 성과중심 문화를 모범적으로 정착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당경쟁 등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KPI에 고객만족도 같은 질적 지표를 확대하는 등의 보완조치를 함께 취해야 한다”면서 “성과중심 문화는 반드시 가야하고 갈 수 밖에 없는 방향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당장 올해부터 성과주의문화 도입에 들어갈 금융공공기관에서는 이달 중 금융위와 경영성과협약(MOU)를 체결하고 상반기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후 노사 합의를 거쳐 연내 제도 개선에 나설 예정이다. 성과연봉 비중은 내년 중으로 도입된다.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권에서는 상황을 지켜보며 차등형 임금피크제나 특별 승진 등을 통해 성과주의 문화 정착에 나설 계획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노사 합의나 성과주의를 위한 표준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이 선택한 최선의 방안이 임직원의 성과나 역량을 기준으로 한 특진이 아니겠냐”며 “금융위원회가 성과주의 확대를 외치는 만큼 행원의 고속 승진이나 차등형 임금피크제와 같은 인사 변화는 더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손병두 금융위 금융정책 국장은 “시중은행에서 역량이 뛰어난 행원을 특별 승진시키거나 하는 것도 성과주의 문화를 위한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며 “KB국민은행이 시도했던 자가진단 서비스의 ‘업무처리량 평가’ 같은 방안도 다면 평가로 활용할 만하다”고 꼽았다.

앞서 KEB하나은행과 농협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은 성과와 역량이 우수한 일반 행원급 직원 등을 특별 승진하는 등 깜짝 인사를 실시했다.

또 KEB하나은행의 경우 수차례 승진이 누락된 대리급 이하 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29%가량 기본급을 삭감하는 방안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당국이 바라는 장미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임직원의 자기계발과 영업력 향상을 위해 ‘자가진단 서비스’를 도입했다가 저성과자 퇴출제도가 아니냐는 내부 직원들의 거센 반발과 여론에 막혀 시행 5일 만에 중단했다.

금융노조가 성과주의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금융산업노조

금융노조가 성과주의 반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금융산업노조

실제 금융 노동조합에서는 성과주의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28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공공부문 노동조합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성과연봉제 및 퇴출제 도입 시도를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완엽 금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정권의 노동개악 칼끝이 공공부문을 1차 목표로 겨누고 있다”면서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도를 공공부문에 먼저 도입해 민간부문까지 확산시키겠다는 불순한 의도”라고 비판했다.

홍 부위원장은 “금융노조는 공공, 금융노동자부터 성과주의의 희생양으로 만들고 한국 전체 노동자들을 해고 자유화의 노동지옥에 밀어넣으려는 시도에 맞서 총력투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나기수 신임 IBK기업은행 노조위원장 또한 취임식에서 “파업을 불사해서라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저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씨티은행 노조 역시 최근 씨티은행이 추진하는 본점 일부 부서장의 전문계약직 전환에 대해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한 꼼수이자 편법"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또 노사 협의회의 의결·합의사항을 위반한 것이라며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했다.

최근 씨티은행은 본점 부서장 53명 가운데 소비자금융 부문의 13명에 대해 호봉사원에서 전문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씨티은행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 전환할 수 없다“며 ”성과에 따라 기존보다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노조는 "씨티은행의 경우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누가 받는지,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르는 개인성과급(IPA)을 매년 1월에 지급하고 있다“며 ”계약직 전환은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노조는 금주 서울지방노동청과 금융감독원에 씨티은행이 진행하고 있는 영업점 재편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현장 실태 조사를 요청할 방침이다.

아울러 2015년 임단협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즉각적인 중노위 조정 등을 신청키로 했다.

조성길 씨티은행 정책국장은 “현재의 한국씨티은행 상황이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협하고 있다”며 “단기실적주의, 편법 사용, 무한 충성 경쟁 등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일전을 준비할 것”이라고 전했다.

당국은 실적 달성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나 과당경쟁 우려에 대해 내부통제와 금융소비자 보호법 제정으로 맞설 계획이다.

손 국장은 “오히려 민간 은행부문에 성과주의가 충분히 도입되지 않아 담보 위주의 대출을 비롯한 보신주의, 부실처리를 미루는 여신 관행, 외부청탁, 온정주의에 입각한 인사풍토 등의 잘못된 관행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며 ”금융개혁 차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법’을 제정하고 금융감독원 소비자 보호조직 강화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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